롯데건설 임승남(林勝男) 사장은 회사에서 ‘철인(鐵人)’으로 불린다.
64세의 나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한 체력을 과시하는 임 사장이 아파트 신축 현장을 방문하는 날이면 직원들은 진땀을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15층 이상 되는 신축 아파트 계단을 한걸음에 올라가는 그를 따라가기란 여간 벅찬 게 아니다. 게다가 옥상에서 가쁜 숨을 고르려고 하면 임 사장은 숨돌릴 틈도 안주고 이것저것 주문한다. 불평보다는 ‘아니, 저 연세에 어디서 저런 체력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낮에만 철인인 게 아니다. 업종 특성상 술자리가 많은 밤에도 ‘폭탄주’를 20잔 이상 마시고도 끄떡없는 술실력으로 상대방을 녹다운시킨다.
건설업계에서 미약한 존재였던 롯데건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데는 여러 요인이 꼽히지만 1998년 롯데건설 사장으로 취임한 임 사장의 강철같은 체력도 큰 바탕이 됐다.
한 임원은 “엽기적인 체력”이라고 한마디로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체력이 있어야 사장직을 수행해야 한다면 차라리 사양하고 싶다”며 고개를 저었다.
SK그룹 손길승(孫吉丞) 회장의 ‘엽기’도 그에 못지 않다. 젊은 시절부터 ‘일 중독자’로 이름이 난 그는 언젠가 열흘 이상 잠을 안자고 일에 매달리다 얼굴에 종기가 생겼다. ‘일벌레’ 손 회장은 그러나 병원으로 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종기를 없애려고 얼굴에 인두질을 했다고 한다.
샐러리맨의 꿈인 최고경영자(CEO)가 되려면 그처럼 ‘독종’이 돼야 할까. 아니면 사장이 되고 나면 독종이 되는 걸까. 체력이든 뭐든 간에 사장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괴력(怪力)’의 소유자〓지금은 몰락했지만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 회장은 점심이나 저녁시간에 비즈니스 상담을 겸한 식사를 한두 시간 간격으로 연달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때마다 음식을 남긴 적이 거의 없이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고 한다. 김 회장과 중국식 풀코스 회식에 잇달아 합석했던 전직 대우 임원은 “김 회장이 기름기 많은 중국 음식 풀코스를 두 시간 만에 두 번씩이나 해치우는 걸 보니 ‘괴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한용외(韓龍外)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총괄사장이 최근 한 저녁모임에서 보여준 자기 통제력도 화젯거리다. 20잔이 넘는 폭탄주를 마시던 그는 한 참석자가 질문을 던지자 수첩을 꺼내 기록하고는 “몇 일, 몇 시에 답변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한 사장은 나중에 약속한 시간이 되자 정확히 전화를 주더라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회사 일 생각〓보통 기업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러나 사장들의 일과표는 근무시간표와는 전혀 별개다.
삼성에버랜드 허태학(許泰鶴) 사장의 평균 근무시간은 하루 14시간. 그러나 회사에 없다고 회사 일을 잊는 건 아니다. 허 사장은 “퇴근 후 잠자리까지 가져가는 고민은 예외없이 회사 일”이라고 말했다.
손길승 회장은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잠잘 때도 꿈속에서 그룹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니 하루 24시간 전부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고 털어놓는다.
▽혹독한 자기계발〓임승남 사장처럼 꼭 술을 잘 마셔야만 사장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술 한 잔에도 취하는 현대캐피탈 이계안(李啓安) 회장은 왕성한 학구열로 그런 ‘핸디캡’을 이겨낸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잡는 등 바쁜 CEO 생활에도 한달 평균 30권가량의 책을 읽는다. 책상에 앉아서 볼 책, 침대에 누워서 볼 책, 차안에서 볼 책 등을 나눠서 몇 권씩 둔다. 부인과 자녀들도 각자 면벽(面壁)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 최근엔 ‘경영학의 진리체계’와 ‘도(道)의 논쟁자들’이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수십권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삼성SDS 김홍기(金弘基) 사장이 전공(경영학)과 무관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4년째 CEO를 하고 있는 것도 독서광인 덕분. 해외 출장이 없는 주말이면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10∼15권가량 손에 잡히는 대로 사서 읽는다.
진대제(陳大濟)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사장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출장을 갈 때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노트북을 열고 미팅 자료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직접 파워포인트로 작성한다. 평소 차량으로 이동할 때도 책을 보거나 해외법인에다 전화를 하는 등 잠시도 쉬지 않는다.
올림푸스한국의 방일석(方日錫) 사장은 영어와 일본어를 우리말처럼 능숙하게 구사한다. 주례회의 때면 직원들에게 세계의 주가 흐름이나 반도체 시장 현황에 대해 브리핑한다. 그 정도면 될 법도 하건만 최근에는 중국사업을 위해 아침에 중국어를 또 배우고 있다.
사장들의 이런 기질은 타고난 것일까. 타고난 것도 있지만 혹독한 자기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임승남 사장이 ‘철인’이 되기까지는 지난 20년 넘게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집에서 1시간 정도 워킹머신과 줄넘기, 아령체조 등 운동을 거른 적이 없는 치열한 자기통제가 있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