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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박세일/노동부는 지금 어디있나

입력 | 2002-03-26 18:27:00


발전노조 파업사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직장에 복귀하지 않은 조합원 3900여명을 전원 해고하겠다고 하고 이에 반발해 노조는 제2차 연대총파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 공기업 노사관계는 왜 안 풀리는 것인가.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너무 과격해서인가, 아니면 노조지도부가 특별히 불법파업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법…원칙 경시…비전문가 수두룩▼

그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과격해서도 아니고 특별히 불법을 좋아해서도 아니다.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 노동운동이든 노동운동에는 ‘과격한 요소’와 ‘온건한 요소’가 함께 존재한다. 어느 요소가 더 드러나는가는 노동운동을 그 사회에서 어떻게 대하고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노사간 진실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상호존중의 의식과 관행이 정착되면 과격요소는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온건합리노선이 노동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노사간 진실한 대화와 상호존중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한마디로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노력을 해야 노사협력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이번 공기업 민영화 관련 파업 문제를 보면 정부는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년 전부터 예상되어 온 일이다.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지난해 여름 공기업노조에 새 집행부가 등장해 노사협상을 요구했어도 7개월 동안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 그 동안 정부는 어디에 있었는가.

적어도 2년 전부터 정부의 경제 노동 홍보 공안관련 부처들이 종합적인 민영화 추진계획을 함께 짜고 노동자 설득에 ‘일찍부터’ 나섰어야 했다.

경제부처는 노동부처와 함께 민영화의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민영화 안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 했어야 했다. 노동부처는 공기업노조들과 사전에 ‘수 없이’ 만나 그들의 불안도 듣고 대책도 함께 고민하고 동시에 민영화의 필요성도 적극 설득했어야 했다. 홍보관련 부처도 민영화의 내용과 필요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對)국민 홍보와 공감대 형성에 노력했어야 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민영화 안을 만들어 냈으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원칙대로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실정법 위반이 나오면 노사를 막론하고 엄격히 법 적용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허송세월하며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한 마디로 ‘국가정책의 기획조정 집행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이렇게 직무유기를 하고 나서 노사협력이 안 되는 이유를 노동운동의 과격성에 돌리는 것은 크게 잘못된 진단이다.

그동안 경제부처는 여전히 노동문제를 외면 내지 경시풍조로 일관했다. 노조 때문에 경제가 안 된다고 노동운동을 욕하는 데는 능숙하나 노동문제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해결능력은 전혀 없었다. 민영화 안을 만들면서 노동부와 충분한 사전의견 교환도, 노동자의 고통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고뇌도 없었다.

우리는 개혁 차원에서 민영화를 무조건 밀어붙일 터이니 노조가 시끄러우면 노동부가 나서서 불이나 끄라는 식이었고 그래도 안 되면 검찰과 경찰이 나서면 조용해진다는 식이었다.

이렇게 노조를 잠재적 범죄집단시하면서 어떻게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고 노사협력이 가능하겠는가. 시대는 21세기인데 박정희시대의 권위주의적 노동정책관에서 한 발짝도 진전된 것이 없는 셈이다.

▼발전파업 정부가 나서야▼

사실 노동부처는 최근 몇 년간 제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노사문제를 노사정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정치적 해결’만을 도모하다 보니 노동정책에 ‘법과 원칙’이 경시되고 노동부는 사실상 뒤로 밀려나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더구나 장관과 수석비서관 등 정책책임자들이 대부분 비전문가들로 임명되어 왔고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바꾸어 왔다. 이러고도 우리나라 노동문제가 잘 풀린다면 그것은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노동운동의 과격성은 분명 사회적 병이다. 그러나 그것은 병의 증상이지 병의 원인이 아니다. 시급히 문제의 근본을 고쳐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하늘을 감동시킬’ 진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노동문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법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