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2층 기자실을 찾은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 전 같은 자리에서 공언했던 방침을 스스로 번복하는 것이 무척 곤혹스러워 보였다.
이 총재가 ‘총재직 유지’ 방침을 밝힌 19일 기자회견 이후 당은 끝없는 내분의 연속이었다.
탈당설이 나돌던 김덕룡(金德龍) 홍사덕(洪思德) 의원은 “이제 희망이 없다”며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는 매일 모임을 갖고 총재 측근 사퇴를 포함한 정풍운동을 선언했다. 잠잠하던 중도파 의원들도 상당수 이 총재 비판대열에 합류할 태세였다.
이 총재는 연일 “흔들리지 않고 나가겠다”며 정면돌파 방침을 밝혔고 주류 측의 대응은 완강했다. 주류와 비주류 간 일대 격돌이 불가피할 듯이 보였다.
20일 터져나온 하순봉(河舜鳳) 부총재의 ‘쥐새끼’ 발언은 비주류 측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미래연대는 이 총재를 직접 겨냥한 투쟁을 벌일 수도 있다며 일전불사 의지를 다졌고 결국 하 부총재는 22일 물러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최병렬(崔秉烈) 강창희(姜昌熙) 부총재는 23일 아침 이 총재를 찾아가 부총재단 일괄사퇴와 비상대책기구 구성을 강력히 요구했다.
민주당 국민경선의 열기와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돌풍은 이 총재의 결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25일 부총재단의 전원 사퇴는 이 총재의 결심을 앞당기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이날 오후부터 이 총재는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후원회 사무실에 칩거한 채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일부 의원들은 이 총재의 호출을 받고 사무실로 불려가기도 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