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는 아주 좋았어요. 이 때문에 지금 일선 고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26일 김성동(金成東)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계획을 설명한 뒤 수능 난이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대꾸한 어이없는 답변이다.
“적정한 수준으로 출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는 “수능시험이 10년째 출제되는데 목표도 없이 출제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변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 시험 난이도를 공표하는 나라가 있습니까. 수능 난이도요. 그걸 어떻게 맞춥니까. 지난해 수능 상위 50% 평균을 77.5점±2.5점으로 맞춘다고 발표했지만 돌이켜보면 수능 점수를 예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목표치는 평가원 측이 제시한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2001학년도 수능에서는 상위 50% 집단의 평균 점수가 1년 전보다 26.8점이나 올라 변별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물수능’이란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평균 점수가 무려 66.8점이나 대폭락하는 바람에 거꾸로 ‘불수능’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수능 난이도가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오락가락하면 일선 교육 현장이 춤출 수밖에 없다. 수능이 어려워지자 학원이나 과외로 눈을 돌리는 수험생이 늘고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난이도가 달라도 수험생 집단 내에서 표준점수로 처리해 정상분포를 만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평가원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하는 것은 출제기관의 기본 임무이며 출제계획을 발표할 때도 수험생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친절한 행정 자세를 갖춰야 할 일이다.
평가원과 교육부에 지난해 수험생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친 일을 생각하면서 평가원 측이 수험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까 기대했던 기자의 ‘상식’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이인철기자 사회1부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