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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먹는 요리]20년간 닫혔던 마음의문 딸기 먹으며 '활짝'

입력 | 2002-03-29 11:42:00


◈'연어알'의 딸기잼

‘연어알’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영상시인 퍼시 애들론의 숨은 걸작이다. 영화의 원제 ‘Salmonberries’(새먼베리)는 북미 태평양 연안에서 나는 나무딸기를 뜻하고, 영화에는 딸기를 광적으로 수집하는 로즈리타(로젤 제크 분)란 주인공이 등장한다.

알래스카의 카츠뷰란 마을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40대 중반의 로즈리타. 그녀는 20대에 자유를 찾아 동독을 탈출하다 오빠의 밀고로 남편을 잃었다. 그 상처로 로즈리타는 수십년간 폐쇄적이고 신경질적이며 독선적인 삶을 산다. 그런 로즈리타를 카츠뷰(케이디 랭 분)란 에스키모 혼혈 남장여인이 찾아온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카츠뷰는 로즈리타에게 자신의 뿌리를 묻는다. 광산의 파이프공인 카츠뷰는 겉모습만 봐선 영락없는 20대 청년이다. 어릴 적 버려져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카츠뷰는 부모를 찾기 위해 로즈리타의 도움을 받으려 하나 그녀는 카츠뷰를 질 나쁜 남자로 생각해 경계한다.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전해주기 위해 로즈리타의 집을 방문한 카츠뷰. 로즈리타는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딸기를 대접하겠다며 딸기잼 병으로 가득 찬 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을 잃은 뒤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병마다 일일이 제조일자를 쓰고 목록을 만들면서 수집한 딸기. 이렇게 그녀가 딸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남편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이기 때문.

그날 로즈리타는 순전히 딸기 때문에 그토록 경계하던 카츠뷰에게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아픈 추억을 털어놓게 되고, 카츠뷰는 로즈리타가 준 너무 오래된 딸기잼을 먹고 취해 잠이 들어버린다. 이들은 그날 이후 무척 가까워져 때론 우정으로, 때론 사랑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데 음식만큼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혹독한 알래스카의 추위 속에서도 출생과 고향에 대한 아픔이 응어리진 두 여인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백승국 baikseungkook@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