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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칼럼]월드컵 vs 아디다스컵

입력 | 2002-03-29 16:53:00


월드컵이 열리는 해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특징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사회 전반에 걸쳐서 '월드컵! 월드컵!' 하는 분위기가 잡힌다. 각종 월드컵 관련 이벤트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TV에서도 '월드컵'이란 단어를 쏟아 낸다. 모든 기업들이 한국팀의 선전과 16강 진출을 기원하기도 한다. 응원단도 모집하고 '성공기원 xxx대회' 같은 것도 많이 열린다. 자기들과 같이 한국 대표팀을 열렬히 성원하자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팬들도 들뜨기는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는 모두가 감독이며 축구협회장이며 대표팀의 주장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한국팀의 문제점을 고민한다. 그들이 그저 날날이 축구팬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한국팀의 전력, 상대팀의 전력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고민들이 충분한 전문지식이나 객관적인 접근이 아니라서 문제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 치고 대표팀의 전술과 선수 기용에 대해서라면 스스로도 대견해 할만큼 썰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월드컵 대목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어딘가 좀 애교스러워 보인다. 대목에 좀 더 팔아 보겠다는 것은 장사꾼으로서 뻔한 것이고, 대목에 맞춰서 왁자지껄하면서 이런저런 썰을 풀어 제끼는 것도 팬들로서는 당연한 모습이다. 어쨌든간에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달아 오르고 사람들이 '축구! 축구!' 하면서 일시적이나마 관심을 가져주기는 하니까…

그렇다면, 눈을 프로 축구판으로 돌려보자. 축구판에도 월드컵이 되면 매번 반복되는 현상이 있다. 우선 그라운드에서 알짜 선수들이 사라진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시즌 개막부터 월드컵 기간까지 프로축구 경기에서는 국가대표 선수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통상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의 성적을 위해 장기간 합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 스페인에 가 있는 것처럼!) 그나마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출전권을 따냈으니 망정이지, 지역 예선을 치렀다면 작년 시즌에도 프로축구 경기에서 대표 선수 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디다스컵이라는 기형적인 대회도 한 몫을 한다. 약간은 '몸풀기 대회' 성격이 강하다. 각 팀들이 우승 하겠다고 발버둥치지도 않고 팬들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팀으로 주력 선수 몇 명이 빠져 나간다고 해서 그리 핏대 올리는 사람들도 없다. 대개는 '정규리그가 문제지!'라는 반응이다. 덕분에 그간 음지에서 지내던 후보 선수들이나 신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또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발굴되는 선수들도 있다. 감독으로서는 겨울 동안 이루어진 팀의 변화를 실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팬들에게도 변화에 대한 적응의 기회가 될 수 있고…

하지만, 이런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가 않다. 국가대표 선수를 다수 보유한 팀은 씨바거리게 되는 반면, 다수의 준국가대표급으로 이루어진 팀은 여유로운 선수진을 운용할 수 있다. 만약 선수층마저 얇은 하위 팀에서 국가대표급의 출중한 선수를 하나 보유하고 있다면, 그 선수의 공백이 가져오는 손실은 무척 클 것이다. 아울러 대형 스타들이 떠난 경기장은 그렇지 않아도 썰렁하기만 한 경기장 스탠드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프로축구의 서막은 이렇게 기형적인 모습이지만 대표팀의 영광은 이 시기에 더욱 화려한 빛을 발한다. 현재의 상황을 함 보시라. 일주일의 3일은 지난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나머지 3일은 다음주에 열릴 경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황선홍의 골, 윤정환과 안정환의 향후 거취, 차두리, 그리고 히딩크 등… (언론을 욕할 필요도 없다. 독자가 원하는 내용이 신문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거니까!)

성남의 샤샤가 세운 한국 프로축구 사상 최고의 기록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1경기 5득점이라는 대기록 하나만 봐도 월드컵의 해에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우리 프로축구를 보게 된다. 한 선수에게 5골을 내줄 만큼 허약한 팀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샤샤가 뛰어난 선수라 해도 부천의 수비진이 그의 발끝에 농락당할 수준은 아니겠지… 그만큼 경기와 대회의 수준, 그리고 거기에 임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생각처럼 진지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닌지… 어쨌든 그런 대기록이 나왔다면 프로 축구의 역사를 다시 쓰는 중대한 사건임에도 고작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에는 10년전의 기록과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는 일회성 관심. (아마 올 연말에 한 번 더 회자될 것이다.)

지금 경기장에 한 번 가 보기 바란다. 한쪽에서는 5천원짜리 티켓을 팔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료 초대권을 나누어 준다. 한쪽에서는 요란하게 스포츠 복표 티켓을 팔고 있지만 나레이터 걸의 미모에 곁눈질을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복표를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경기 일정을 한번 볼까? 개막 후 2주간 4경기를 치른 후에 2주간 휴식기를 가지고 다시 두번째 라운드에 들어간다. 준결승과 결승을 제외하고 팀당 8경기의 조별 예선을 치르기 위해 한달이 넘는 기간을 꾸역꾸역 꾸려 나가는 셈이다. 축축 늘어진 경기 일정과 팬들의 무관심… 전국에 멋들어지게 지어 올린 월드컵 경기장은 그림의 떡이다. 행여 다칠세라, 그 경기장은 사용할 수가 없다. 그리고, 경기장은 썰렁하다. 이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는 어떨까? 한 마디로 난리 부르스를 떤다. 프로축구에 르네상스가 찾아오고 스타들의 주가는 급증한다. 한국 대표팀의 성적에 그리 민감하지도 않다. 월드컵을 통해 느낀 축구의 열기, 재미, 한달간 불철주야 겪었던 축구의 체질화(?), 그리고 스타들의 복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월드컵 후에는 축구장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북적거린다.

물론 아디다스컵은 월드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회이다. 타이틀 스폰서 하나를 더 확보하기 위한 프로축구연맹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연히 한국 프로축구의 서막을 알리는 대회이고 나름대로 수년간 이어오면서 정체성을 가지는 대회다.

월드컵의 해. 그리고, 월드컵 분위기. 모두가 염원하는 16강 진출과 1승. 개최국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 월드컵을 마친 후에 불어 닥칠 또 한차례의 프로축구 르네상스… 4년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자면, 아디다스컵 대회는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그리고, '아디다스컵'이라는 대회 속에는 한국 프로축구가 가지는 모든 불안정한 모습이 망라되어 있다.

컵이라고 어디 다 같은 컵인가? 하지만, 아디다스컵도 컵은 컵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보자. 제대로 된 컵을 만들던가, 아니면 깨뜨려 버리던가… 어떤 선택을 하기에 앞서서, 그 속을 들여다 보고 그 속에서 충실하지 못한다면 4년 뒤에도 이런 모습은 바뀌지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아디다스컵이 곧 월드컵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아디다스컵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월드컵 개최국'이나 '5회 연속 진출국'이라는 가면속에 감추어진 우리의 진짜 모습이라 생각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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