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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릴린 먼로 키운 빌리 와일더 감독 별세

입력 | 2002-03-29 18:15:00


‘7년 만의 외출’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The Apartment)’ ‘선셋대로(Sunset Boulevard)’ 등을 연출한 할리우드의 거장 빌리 와일더 감독이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향년 96세.

190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와일더 감독의 본명은 새뮤얼 와일더. 유대인인 그는 독일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자 나치를 피해 1934년 할리우드로 건너오면서 이름을 ‘빌리’로 바꿨다.

▼美사회 냉소적 풍자▼

할리우드에서 각본을 쓰며 활동하다가 1942년 ‘다수와 소수’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80년대 초 은퇴할 때까지 할리우드에서 반세기 동안 5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관객과 비평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평소 “하버드대 법대에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하곤 했던 그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풍자와 비유, 웃음으로 포장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상복도 많았다. 알코올 중독자의 자화상을 그린 ‘잃어버린 주말(The Lost Weekend·1945년)’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색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오스카상 후보에 21번 올랐고 7개의 오스카상(1986년 평생 공로상 포함)을 탔다.

50년에는 ‘선셋대로’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탔고 60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3개의 오스카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그는 3개의 오스카상을 한 해에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오스카상 7번 수상▼

영화 ‘7년 만의 외출’(왼쪽)‘뜨거운 것이 좋아’

‘뜨거운 것이 좋아’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를 캐스팅해 먼로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내기도 했지만 그가 가장 아끼고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는 역시 ‘잃어버린 주말’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의 잭 레몬이었다. 레몬도 “내 남은 평생을 빌리 와일더 영화에만 출연하면서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절친했다.

그는 82년 레몬을 캐스팅해 ‘버디 버디(Buddy Buddy)’를 만들었지만 관객과 비평가 모두로부터 외면받았다.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해 말년에는 미술품을 수집하며 보냈다.

하지만 93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연출한 ‘쉰들러 리스트’에 대해서는 의욕을 보이며 연출을 자청하기도 했다. 자신은 할리우드로 건너와 유대인 수용소행을 면했지만, 끝내 아우슈비츠에서 죽어야 했던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이었던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자 “이 영화를 내가 만들었다면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