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물론 한반도 전체가 전기(轉機)를 맞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우선 대한민국의 경우, 이 한 해에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월드컵축구대회, 아시아경기대회를 몇 달 간격으로 치르게 되며 특히 대선 결과에 따라 국민의 앞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어 한반도 전체를 볼 때, 북한의 대량파괴무기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사이의 협상, 그리고 남북대화의 향방은 민족전체의 명운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먼저 세계정세 전반에 눈을 돌린다면 국제관계는 점점 무한정의 경쟁과 각축 속에서 불안과 혼돈을 향해 가고 있다. 동서냉전이 막을 내렸던 1990년대 초만 해도 앞으로 인류가 탈이념-탈냉전의 바탕 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지향할 것으로 낙관했지만 그 이후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많은 지역에서의 인종전쟁 종교전쟁 경제전쟁 그리고 9·11테러 등이 말해주었듯 ‘새로운 세계 무질서’를 만들어왔다.
국제질서가 이렇게 유혈과 혼란으로 유도되게 된 데는 패권에 기초해 다른 나라들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의 대외정책을 추구하는 강대국들, 또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과 이익만을 앞세워 협상보다는 무력행사에 의존하는 일부 국가들이나 집단들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심각하게는 광신적이고 국수주의적 권력자들이 이끄는 독재국가들에 책임이 크다. 자신의 국민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심판도, 통제도 받지 않는 자기임명적(自己任命的) 억압체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시장경제 수호▼
우리는 이러한 시각에서 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이 대량살상무기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것을 손에 쥐고 있거나 쥐려고 하는 한에 있어서는 한반도에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현황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북한의 집권세력은 이 문제를 남북대화의 의제에서 사실상 제외시키고 오로지 북-미협상에서만 다루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2000년 6·15남북공동성명에 이 문제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까닭은 북한의 그러한 주장이 그래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햇볕정책의 기본적 허점을 보게 되거니와 이 문제가 합리적으로 풀리지 않는다면 청와대와 통일부 스스로 공언했듯 오는 8월부터 내년 사이에 한반도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 것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의 소중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인류보편의 원리에서 너무나 이탈해 왔다는 데 있다. 그런데 그것이 북한의 내부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영구평화론자들이 공통되게 지적해 왔듯,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지키는 나라는 비호전적임에 반해 독재주의 그리고 독재주의에 결부된 사회주의에 선 나라는 호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실의 연장선 위에서, 그러므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통일은 남과 북 모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작동할 때 실현될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바로 그러한 역사인식에서 본지는 북한의 민주화와 시장경제로의 개혁에 관심을 쏟아 왔던 것이다.
▼민족의 번영-통일 향한 큰걸음▼
똑같은 논리에서 이번 대선은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공고화(鞏固化)’하고 시장경제원리가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확립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관한 일반이론이 강조하듯 우선 ‘반체제적 사회운동’이 선거과정에서 배제됨이 바람직하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는 첫째, 지역패권주의에 입각한 선거전략과 투표행태에 커다란 개혁이 이뤄져 경륜과 정책에 입각한 공정한 경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둘째, 천문학적 돈이 동원되는, 그리하여 처음부터 ‘부정과 불법의 선거자금’의 족쇄에 묶인 채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 후유증이 국가적 부담과 대통령의 불행으로 이어진 지난날의 관행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군중주의적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시장경제원리를 제약하거나 침해하는 내용의 공약을 내세워 표를 얻으려는 발상과 행태도 버려야 할 것이다. 넷째, 대북정책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그리고 이 원리를 존중하는 전통적 우방들 및 국제사회와의 신뢰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서 실질적으로 평화를 담보하고 궁극적인 통일을 예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사랑과 충고와 격려에 힘입어 82년의 온갖 탄압과 풍상을 이겨내며 민족의 대표적 정론지로 자리잡은 본지는 이번 대선이 그렇게 마무리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민주와 번영 및 통일을 향해 큰 진전이 이뤄질 수 있게끔 감시하는 가운데 사실에 충실한 보도와 공정한 논평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국민에게 보답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