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은 상투적인 표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은 D램 반도체에 이어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에서도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고 세계 최대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 가전과 휴대전화 단말기 분야의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한국산 자동차가 세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따라잡기’식 성장 패러다임이 한계를 보이면서 한국의 기업들은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문턱’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고급 기술과 브랜드 파워로 무장한 선진국과 중국 등 한국을 맹렬히 추격해오는 후발개도국 사이에서 압박을 당하는 ‘넛 크래킹’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것.
▽고부가가치 분야에 진입하지 못한다〓한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메모리 분야에 집중돼 있는 취약한 구조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교보증권 김영준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분야는 기술면에서 진입장벽이 낮아 중국처럼 대규모 자본을 투입할 여력이 있는 나라들이 언제 추격해올지 모른다”며 “기술장벽이 높은 비메모리 분야 진입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미국의 4대 전략컨설팅 업체 중 하나인 모니터 컴퍼니 한만현 이사도 “한국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14%에 불과한 D램 분야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로 반도체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며 “하지만 세계 시장의 76%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2000년 말 현재 시장점유율이 1.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조선분야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수위자리를 다투며 일본과 함께 세계 시장의 65%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호화 여객선은 건조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핵심기술이 없다〓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응용기술 개발이나 이를 통한 제품화 기술이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지만 핵심기술 및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각종 네트워크 장비의 국산화율은 10%에 불과하며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등 디지털 가전분야는 절반이 넘는 부품을 수입하고 있다. 주력 수출 제품인 휴대전화 단말기와 PC의 국산화율도 60%를 조금 넘는 수준.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때마다 수출이 수입을 유발하는 구조여서 부품 분야의 무역수지 적자가 연 140억달러에 이른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브랜드 파워가 없다〓해외에서 ‘값싼 차’로 인식되던 한국산 자동차는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지만 아직도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브랜드 파워의 격차는 자동차 값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곧 자동차 메이커의 수익성과 직결된다. 1999년 기준 현대차의 자동차 1대당 순이익은 271달러로 일본 혼다(1220달러)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그만큼 수출시장에서 제 값을 못받고 있다는 의미.
현대증권 김학주 애널리스트는 “현대차는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대차하면 떠오를 만한 ‘빅히트 카’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대칭적인 산업구조〓그동안 급한대로 외국에서 기술이나 부품을 들여다가 제품을 만들다보니 관련 산업간에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한 것도 풀어야할 과제로 지적된다.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가 독주하는 동안 파운더리 업체(생산만 하는 업체)나 펩리스 업체(기술을 가지고 설계만 하는 업체) 등 관련 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차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부품업계는 낙후돼 있다. 정보통신 산업에서도 하드웨어 부문에 지나치게 치중해 소프트웨어 부문이 낙후돼 있는 형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재윤 수석연구원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발전 모델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선발업체를 따라잡는’식의 캐치업 모델이었다”며 “이제 이런 전략에 수정을 가할 때”라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