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해외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국내 대기업들이 다시 해외경영에 시동을 걸고 있다.
삼성 LG SK 등이 체계적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대규모 플랜을 가동시켰으며, 현대차는 미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현지공장 건립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요즘 대기업들의 해외경영은 거품경제 시대의 해외진출과는 달리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추구한다. 재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올해가 국내 대기업의 해외 경영에 역사적 이정표를 만드는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 “중국은 제2의 내수시장”〓삼성은 지난달 이형도(李亨道) 삼성전기 부회장을 중국 총괄 대표로 발령하면서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급가속했다. 이건희(李健熙) 회장도 자주 중국 현지공장을 방문하는 등 그룹 전체가 ‘중국 경영’에 치중하고 있을 정도.
중국 진출에 적극적인 삼성SDI는 지난해 6월 상하이에 진공형광표시관(VFD) 합작법인을 설립해 현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인근에 짓고 있는 삼성SDI 브라운관 공장도 하반기 중에는 가동될 예정.
전세계 총 89개 지역에 생산법인과 서비스망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는 북미 유럽 동남아 아랍 중국 러시아 중남미 등 7개 해외 지역별 총괄 체제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생산과 마케팅 연구개발 등을 모두 현지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으로 현지화를 추구한다는 전략.
▽LG, “현지화에 주력하라”〓구본무(具本茂) 회장은 지난해 10월 계열사 최고경영자 30여명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이후 줄곧 중국시장 개척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을 단지 경쟁관계로만 보지 말고 동반자로 인식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
LG전자는 중국에만 총 19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지 종업원 1만8000명 중 98%가 중국인일 정도로 현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TV를 생산하는 선양법인은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많은 TV를 수출하는 기업으로 선정됐으며, 백색가전 제품을 생산하는 톈진법인도 세계적인 수출 기지로 성장해 가고 있다.
대신 미국과 유럽 등에는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LG전자는 미국의 자회사인 제니스를 통해 디지털TV와 DVD플레이어 등 첨단 디지털 제품의 마케팅을 실시중이며, LG화학은 올해 중 미국과 유럽에 고기능성 산업재와 정보전자소재 등을 판매할 별도의 법인을 만들 예정이다.
▽SK, “정보통신 사업 등에 주력”〓SK는 올해 초부터 중국의 정보통신과 생명과학 사업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2년까지는 중국 현지법인인 ‘SK차이나’를 140억위안(약 2조원) 이상의 가치를 갖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SK글로벌이 경기회복에 발맞춰 금융 등의 신규사업에 진출할 예정이며 SK텔레콤은 국내기업과 만든 컨소시엄을 통해 베트남에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전화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이밖에도 중국과 몽골, 베트남 등에 꾸준히 투자협상을 진행중이다.
▽현대차,“모델의 현지화 추진”〓지난해 미국시장에서 선전한 현대차는 현지 디자인 센터를 착공해 미국인의 취향에 맞는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 제네바모터쇼에서 월드카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상품 기획, 마케팅, 판매 등을 총괄하는 유럽법인을 출범시키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베이징기차공업공고유한책임공사와 베이징현대기차유한공사를 설립하기로 하는 의향서를 체결, 본격적인 중국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