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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휴스 칼럼]피레스와 호나우두

입력 | 2002-04-01 17:29:00


서울에서의 킥오프까지 앞으로 두달. 1000명의 선수들이 자신의 남은 스포츠 인생을 좌우할 전화벨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중 일부는 백만장자일수도 있고 전세계 어디서나 알아주는 스타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처받기 쉽고 일부는 두려움까지 느낀다.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은 적극적이고 강하다. 여러분의 환상적인 경기장에서 고품격 축구를 펼쳐보이기 위해 늘 준비돼 있다.

그럼에도 다시 말하건대 그들은 상처받기 쉽다. 축구계에는 ‘기풍은 영원하되 기량은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몇몇 최정상 선수만이 자신의 기량을 필요할 때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지단이나 토티, 라울, 베컴같은 선수가 그런 예로 이들은 공작이 그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치듯 월드컵에서 만개한 기량을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의 태클이나 한가닥 찢어진 힘줄, 아니면 아무리 스타 선수일지라도 팀 조직력에 맞지 않다는 감독의 순간 판단이 이들을 무대밖으로 쫓아낼 수 있다.

극동으로의 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가 1000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한가지 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등록할 수 있는 선수는 팀당 23명, 32개국 전체 736명에 불과하다. 많은 감독은 여전히 ‘베스트11’을 구성하지 못했다. 그들은 선수들이 월드컵때 어느만큼 신선함과 열정을 갖추게 될지 가늠하고 있다.

축구팬이라면 프랑스대표팀 날개 로베르트 피레스와 브라질 포워드 호나우두를 월드컵 무대에서 지워버리기 힘들 것이다.

한 주전 피레스는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아스날에서 그가 펼친 활약은 많은 사람이 주저없이 그를 올해의 선수로 지명할 정도로 대단했다. 나이도 마침 경험과 체력이 절정에 올라있는 시점이다. 이날 그는 현란한 드리블과 그림같은 슈팅으로 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에 피레스는 2002월드컵 무대를 등지게 됐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그리스 출신 니코스 다비자스가 두발을 높이 든 채 강력한 태클을 한 것. 피레스는 감각적인 점프로 태클을 피했지만 착지 순간 균형을 잃었다. 오른쪽 무릎이 휘어졌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들것에 실리기도 전 그는 이미 올시즌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걸 느꼈다.

이후 피레스는 불확실의 도마위에 올랐다. 사흘간 세 명의 프랑스 의사가 그를 검사했다. 첫 번째 의사는 십자인대가 손상됐다고 진단했다. 피레스는 언론에 “여러분처럼 월드컵을 사이드라인에서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게 인생이다. 내가 없어도 레블뢰(프랑스대표팀 애칭)는 우승할 것이다. 내 걱정은 말라.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난 지금까지 운이 좋은 편이었다”며 여유를 보였다.

두 번째로 진찰한 의사는 당장 수술할 필요는 없다며 피레스를 격려했다. 그는 “3주 정도 기다려라. 자연히 치유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의사가 진찰하기까지 24시간 동안 피레스는 희망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 의사는 수술이 유일한 방법이고 매일 망설일때마다 수술 위험이 높아진다고 충고했다.

마침내 목요일 피레스는 “내가 월드컵에 나설 수 없다는게 분명해진 만큼 제발 나를 가만 놔 달라. 나는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릴 것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나는 다른 보통 사람들의 경우처럼 내 무릎 부상에 관해서도 프라이버시가 존중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피레스가 프라이버시를 호소하고 나선 시기에 2년6개월간 그라운드를 떠나있던 호나우두가 브라질 대표팀에 복귀했다.

호나우두는 유고슬로비아를 상대로 반경기만 뛰었다. 그는 몇차례 날카로운 슛을 선보였고 전혀 위축되지도 않았다. 그런대로 상당히 잘 달렸고 패스도 날카로웠다. 4년전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폭발적인 스트라이커는 아직 아닐지라도 예전의 기량을 되찾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피레스가 5월31일 월드컵 킥오프를 기다리는 1000명의 선수들에게 ‘경고등’이라면 호나우두는 다시 살아난 ‘희망’이다. 오른쪽 무릎이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수술,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지난 월드컵 결승 직전의 근육 경련,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숱하게 써내려간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제 호나우두는 한국에 나타날 확률이 높아졌다.

우리는 그의 희망을 함께 나눠야 한다. 그간 그는 가혹한 혹평을 견뎌내 왔고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서 고통과 의혹의 눈초리에 맞서 싸우는데 엄청난 댓가를 지불했다. 만약 호나우두가 돌아온다면, 심지어 제기량의 75%만 발휘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강력한 스트라이커중 하나다.

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