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마구잡이식 복권 발행이 도를 넘고 있다. 기금 조성이란 명분으로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복권 발행에 나서는 바람에 전체 발행 복권의 약 40%가 팔리지 않고 폐기될 정도로 복권 발행이 남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금 조성이란 취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사행심을 조장하고 서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준조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복권 남발과 사회적 낭비〓현재 복권을 발행하고 있는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문화관광부 노동부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 산림청 국가보훈처 보건복지부 제주도 등 10개. 이들 기관은 추첨식과 즉석식,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사이버식 등 모두 21종의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본사 취재팀이 최근 이들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복권 발행 및 판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발행한 복권은 모두 21억666만여장으로 이중 12억9620만6000여장이 팔리고 나머지 8억1045만4000여장은 소각되거나 재생용지를 만드는데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복권 1장을 발행하는데 드는 비용은 종이복권(추첨식)이 약 11원, 즉석식 복권은 약 25원으로 146억원가량이 낭비된 셈이다.
▽저조한 기금 조성〓기금 조성률은 주택은행(37%)과 과기부(26%) 발행 복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적정수준인 25%에 못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림청이 발행하는 녹색복권은 기금 조성률이 13%에 불과하며 노동부 발행의 복지복권은 18%로 나타났다. 기금 조성률은 매출액에서 당첨금과 제반 비용을 제외한 수익금이 전체 판매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매 실적이 저조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조성률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관들은 복권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당첨금을 계속 높여 한탕주의와 사행심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99년 말 주택은행이 당첨금 20억원짜리 밀레니엄복권을 발행한 이후 ‘당첨금 높이기 경쟁’이 일어나면서 지금은 최대 100억원을 주는 빅슈퍼 더블복권(과기부)까지 나왔다.
▽과열 원인과 문제점〓복권시장 과열은 제도상의 허점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느 정부기관이나 필요할 경우 법을 새로 만들거나 고쳐 장관 재량으로 복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과거 총리실 산하에 복권발행조정위원회를 두고 최고 당첨금과 발행장수 등을 조정했지만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규제 완화를 이유로 이를 폐지했다.
또 각 기관 실무자들이 이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복권발행협의회가 있지만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라 결국 복권 발행 물량과 당첨금 조정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판매업자는 많아 발행장수를 늘리지 않으면 판매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당첨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제살 깎아먹기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徐千範) 소장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복권산업발전위원회’를 통해 최고 당첨금 등을 제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