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동안 한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창문을 연다. 따스한 햇살이 문갑 위의 난초 화분위에 기우뚱 빛을 던진다.
몸을 반쯤 내놓고 심호흡을 한다. 아지랑이가 온 대지를 덮고, 나무들은 푸른 새순으로 찬연한 생명의 신호를 준비한다. 장엄하고 상서로운 느낌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듯한 기운, 꿈꾸는 듯 조는 듯 하면서도 장엄한, 거시적인, 만물이 부풀어 오르는 가슴벅찬 이미지가 이 계절을 뒤덮는다. 봄, 특히 이른 봄은 ‘엄숙한’ 계절인 것이다.
이런 계절에는 프랑스인 샤를 프랑수아 구노의 음반들을 즐겨 집어들게 된다. 구노는 생애 전체가 독실한 신앙으로 무장된 인물이었고, 특히나 그의 미사곡은 하늘의 놀라운 은총을 따스한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대표 종교곡인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는 테너솔로 ‘상투스’ 로 특히 유명한 작품이지만,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글로리아’는 더더욱 장려하다. 목관과 호른이 조심스레 싹이 움트는 듯, 다가오는 환희에 가슴을 설레는 듯한 음형을 연주하면 현의 잔잔한 트레몰로와 큰북 심벌즈의 가만가만한 피아니시모 속에 소프라노가 신의 영광을 노래한다. 신앙인들에게는 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악장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세계의 영광, 생명의 영광,나아가 생명이 힘을 얻어 소생하는 봄의 영광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뉴스 데이’ (신의 어린양) 악장은 마치 봄날의 저물어가는 햇살과 같이 몸을 감싼다. 하프의 장식음형과 첼로의 가만가만한 부선율 사이로 소프라노가 ‘주여 한 말씀만 하소서, 내가 나으리이다’를 노래할 때 가슴깊이 삶의 충만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 외국의 평자는 이 작품이 나타내는 정서를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에 비교하기도 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표현인데, 특히 ‘세실리아 미사’ 중 관현악으로만 연주되는 ‘ 오페르토리(봉헌)’ 악장은 더더욱 베토벤의 아다지오와 정서적으로 닮아 있다. 그리고 보면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아다지오 역시 봄의 희망과 소생의 기운을 느끼기에 손색없는 봄의 악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의 명연으로는 EMI사가 내놓은 두 음반을 꼽을 수 있다. 60년대에 처음 선보인 장 클로드 아르트망 지휘의 음반, 80년대에 녹음된 조르쥬 프레트르 지휘의 음반이 그것. 20여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두 음반의 이미지는 어딘가 비슷하다. 소프라노 솔로를 맡은 필라 로렌가 (아르트망 판) 바바라 헨드릭스 (프레트르 판)의 가슴떨리는 듯한 비브라토가 귀를 따뜻하게 덥힌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