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연세대 교양강의 ‘현대사회와 정신건강’ 시간. “혼전 성관계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손을 들어 보라”는 교수의 말에 60여명의 수강생 중 1명의 남학생만이 손을 들었다. 이에 교수가 “이 친구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라고 되묻자 학생들은 한바탕 웃었다.
대학가의 성(性) 의식을 보여 주는 한 대목이다.
독신자가 늘고 이혼이 증가하는 등 결혼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바뀌고 있는 가운데 대학가는 이미 혼전 성관계나 동거(同居)를 더 이상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과거에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었으나 요즘은 교육수준이 높은 층을 중심으로 동거가 확산되면서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이 최근 고려대생 2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동거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고 있으며 100명 중 5명은 동거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신촌에서 2년째 동거 중인 Y대 이모씨(22)와 E대 신모씨(20). 사귄 지 6개월 되던 날 지방 출신인 신씨가 이씨의 원룸에 들어가 동거를 시작했다. 양가 부모들은 동거 사실을 모르지만 친구들은 알고 있다.
대학생들의 동거는 생활비 절감 등 편의를 위해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다. 해외연수 등으로 이성 친구가 외국에 가게 되면 다른 이성과 한시적으로 계약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해외로 간 학생은 언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현지인과 동거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모 대학 지방캠퍼스에 다니는 J씨(29)는 여자친구 L씨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걸 알고 생활비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끼리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2년간 동거를 하다 최근 부모의 반대로 헤어졌다.
양가 부모의 허락을 전제로 여자친구와 한 달간 동거했던 고려대 C씨(23)는 “동거에는 임신에 대한 책임, 금전적 책임 못지않게 정신적 책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대 정모씨(23·여)는 지난해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국 대학에 다니면서 현지에서 사귄 교포학생과 동거를 했다. 방세와 생활비를 아끼자는 생각에서였다. 정씨는 한국에 돌아오면서 남자친구와 자연스레 연락을 끊었다.
이들은 ‘동거〓성(性)’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다. 동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 성관계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咸仁嬉) 교수는 “요즘의 대학생들은 남녀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던 이중의 성규범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동거가 우리사회의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동거의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 줄 일정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