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명성황후' 고종역 이진우(왼쪽)SBS '여인천하' 중종역 최종환
《사극의 꽃은 왕. 왕으로 캐스팅되는 순간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러나 SBS ‘여인천하’와 KBS2 ‘명성황후’의 중종(최종환)과 고종(이진우)은 문정왕후와 경빈(여인천하), 명성황후의 기세에 눌려 ‘기죽어’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 ‘왕’에게 해당하는 보이지 않는 흥행 공식은 “무능하게 그려질수록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것. 이런 와중에 나름대로 속앓이를 했던 최종환과 이진우가 1일 봄볕 좋은 오후, 곤룡포를 벗고 ‘회동’을 가졌다.》
#제목부터 수상했다
▽최종환(이하 최)〓처음에는 중종의 비중이 적었어요. 드라마 제목이 말해주잖아요. 여.인.천.하. 50회로 예정됐을 때 10회 정도만 부각되고 사라지는 인물이었어요. 배역을 맡은 뒤 서울에서 속초까지 5박 6일을 걸었어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고. 다행히 지금은 비중이 많이 늘어났지만.
▽이진우(이하 이)〓제목이 말해주는 건 저도 마찬가지죠. 명.성.황.후. 고종이 주인공이 아닌 것은 확실하죠(웃음). 저도 허구헌날 우는 연기를 하느라 힘들어요. 고종은 사실 똑똑한 왕이에요. 다만 아버지(대원군)와 아내(명성황후)의 갈등 속에서 고민할 뿐이죠.
▽최〓중종도 마찬가지에요. 역할 분석하느라 드라마 시작 전 이것 저것 읽어봤더니 드라마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아요. 한 번은 김재형 PD의 뜻과 제 뜻이 맞지 않아 끝까지 오기를 부리다 21차례나 NG를 냈어요.
▽이〓저도 96년 KBS1 사극 ‘조광조’에서 중종역을 했어요. 당시는 조광조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중종은 보수와 개혁파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죠. 하긴 그 때도 중종이 주인공이 아니긴 마찬가지였지만(웃음).
#왕 좋던 시절은 갔다
▽이〓중종 고종 모두 무능하게 그려질수록 훌륭한 ‘조연’이 되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극적 재미를 위해선 어쩔 수 없죠. 연기자야 늘 맡은 역에 충실할 밖에.
▽최〓그래도 도무지 왕하는 맛이 나야 말이죠. 어딜가도 왕은 제쳐두고 중전이나 후궁부터 소개를 하니. 하다못해 천민(정난정)보다도 뒷전이라니까. 가끔은 속상하죠.
▽이〓그래도 음식점에 가면 “임금님 오셨다” “수라상을 차려드리겠다”는 등의 농담도 던져요.
▽최〓요즘 어디가서 발 뻗고 앉질 못해요. 항상 정자세로 앉죠. 1년 반이나 왕 역할을 했으니까. 덕분에 경복궁이 내 집처럼 편해졌어요(웃음). 경복궁에 촬영하러 가면 경비아저씨가 어찌나 깎듯이 인사를 해주시는지.
#내가 왕이라면…
▽이〓제가 공수부대 출신이에요. 얼굴이 다소 알려진 뒤 군대에 갔으니 연예인들이 주로 가는 문선대에 갈 수도 있었지만 싫었어요. ‘사나이’로 태어나 값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고종의 캐릭터와는 멀어도 한참 멀죠.
▽최〓‘여인천하’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은 다 바보야(웃음). 중종 윤원형 윤원로 길상이 등…. 나중에 또 왕 배역을 맡는다면 연산군같은 폭군 역을 해보고 싶어요. “미쳤다”는 소리 들어도 좋으니까 내 맘대로 해보게(웃음). 아니면 의자왕? 삼천궁녀 캐스팅하려면 좀 어렵긴 하겠지만….
▽이〓제가 실제 고종이었다면 명성황후와 대원군을 모두 제거했을 것 같아요. 왕이 힘이 있어야 왕권이 서죠. 물론 고종도 주변상황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고종은 매력적이죠. 내면적 고뇌를 연기로 소화하기가 만만치 않아요.
▽최〓사극 속의 ‘여성 파워’는 여성 권익의 신장을 반영하는 듯 해요. 외국인이 우리 사극을 보면 아마 “조선은 여성의 나라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무능하게 보일수록 극이 산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게 배우의 참된 자세이구요.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