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도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핵폐기물 처리장 등 기피시설이 자기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건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은 예가 적지 않다. 이 경우 △공평한 부담 △적절한 보상 △주민 참여 유도 등 세 가지 원칙이 공통적으로 적용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90년 미국 뉴욕시(市)가 시 헌장을 개정하면서 만든 ‘공평부담기준(Fair Share Criteria)’은 기피시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제도로 꼽힌다.
이 기준에 따르면 새로운 도시시설을 만들려는 계획자는 그 사업이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 지리적인 위치의 타당성 등을 미리 발표해야 한다. 시 산하 도시위원회는 계획자가 제시한 이 계획이 적절한지를 검토하는 데 이때 지역 주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언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설의 운영 상태를 모니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민에게 제공한다.
주민에게 감추는 것 없이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고 또 적극적인 주민 참여를 유도해 불공정 시비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적절한 보상도 집단이기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
미국 톰킨즈시(市)는 1980년대 중반 새로운 쓰레기 매립지를 만들면서 이와 관련한 보험을 들었다. 매립지 때문에 주민이 재산상 손실을 입거나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면 이를 보험을 통해 보상한다는 취지였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주민 손실의 부담을 시에서 맡아야 한다. 시는 당연히 주민의 손실 규모를 줄이려 시도할 것이고 주민이 이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보험에 들면 부담은 보험사의 몫이기 때문에 시는 주민의 손실 규모를 제대로 평가하고 보상할 수 있다.
1979년 일본 무사시노시(市)가 쓰레기 소각시설을 주민의 동의 아래 만든 것은 투명한 일 처리를 통해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
시는 소각시설을 만들면서 입지선정과 설계 및 운영방법 등에 대해 주민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에 주민도 ‘특별시민위원회’를 만들어 중요 안건을 직접 의논했고 결국 시와의 협의를 통해 소각시설을 받아들였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