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 미네랄 워터, 봄을 마신다
'신비의 물방울.’ 이는 1990년대에 홋카이도 삿브사가 개발한 상표다. 가혹하리만치 비정한 물전쟁을 치르는 공해시대에 듣기만 해도 목이 마르는 유혹적인 이니셜이다. 이 물방울은 어떻게 개발된 것일까.
홋카이도의 4월은 아직 겨울이다. 허허벌판에 마령서밭과 수림지대의 거자수, 전분공장 그리고 삼나무와 전나무, 잣나무(백송) 등 목재가 그들의 생계 수단이다. 5월에 가서야 짧은 봄과 함께 거자수가 나온다. 삿브사 사장은 ‘신비의 물방울’ 생산량을 현재의 10배인 50만병으로 겨냥하며 자국 내 1억 인구를 향해 정조준하고 있다. 한 홉들이 한 병이 350엔이니 우리 돈으론 4000원쯤 되는 셈이다.
남도 사람치고 고로쇠물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짭짤한 오징어 피데기나 북어를 꿰차고 지리산 줄기의 산막굴에 들어가 밤새도록 화투치며 이 물을 마신다. 위장병, 고혈압, 이뇨, 당뇨, 변비, 산후통 등에 좋다. 특히 거자수보다 고로쇠물에 칼슘성분이 더 많아 골리수(骨利水)라고도 불렀다. 삿브사가 말한 대로 이는 약수가 아니라 음료수다. 다시 말해 남도의 천연 미네랄 워터다. 하룻밤 한 말을 마셔도 설사를 하지 않으니 ‘신비의 물방울’이란 말도 허튼 말은 아닐 것이다.
거자수가 고우를 기점으로 전후 닷새에 채취하는 수액이라면, 고로쇠물의 채취 시기는 경칩을 전후한 닷새가 된다. 고로쇠는 단풍나무과에 속한다. 거자수는 흔히 자작나무를 이르는데 동북아 일대를 덮고 있다. 남도 산천의 300m 해발이면 고로쇠의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거자수는 800m 이상이 한계선이므로 지리산엔 있어도 백운산엔 없다. 고로쇠물은 영하 3~4℃에서 바닥에 얼음이 깔리고 일교차가 15℃ 정도로 심할 때 가장 많이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바람이 없이 잔풍한 날씨에 아직도 산봉우리엔 희끗희끗 눈이 남아 있을 때다.
지리산 약수제(藥水祭)는 화랑들이 1100년 전부터 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천왕봉에 모시고 올렸던 천제(天祭)다. 신성한 국모신앙과 선풍의 맥이 살아 있는 축제며, 남도에선 무등산 천제단에서 올리는 개천제(開天祭)와 맥을 같이한다. 계룡산(신도안)이 정감록에 얽힌 왕동설, 지기쇠왕설에 뿌리를 둔 신흥 종교의 텃밭이라면 모악산은 미륵신앙(금산사), 섬진강 남단은 국모신앙의 텃밭이며 풍류황권(風流黃卷·화랑의 호적부)의 맥이 굽이치는 화조월석(花朝月夕)의 땅이다. 1000년 전부터 ‘국토신앙’의 모태로서 ‘신비의 물방울’을 받아 약수로 올리고, 물방울을 따 먹었던 우리 선조들의 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려 때는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끌어내려 노고할미 신선을 모신 당제였으며, 조선시대엔 다시 산동면 갈미봉 밑 단동(터가 지금도 남아 있음)으로 옮겨 지내다가 일제강점기에 맥이 끊겼다. 광복 후 구례산악회가 곡우절 행사를 가끔 치렀고, 구례관광협회(1964년)가 발족되면서 현재의 남악사(지리산은 남악)에서 4월20일경에 약수제를 치른다.
‘신비의 물방울’은 아무리 산성비나 황사비를 맞고 자랄지라도 지하수보다 낫다. 홋카이도 농대에 데레사와(寺澤實)란 교수가 있었다.
90년대 어느 날 무심히 교정 가로수길을 걷다 백화(白華·거자수) 나뭇가지를 꺾은 그는 그 물맛을 보고 실험에 착수했다. 그때 수원농대 교수가 실습생을 이끌고 데레사와 교수를 찾아 “우리는 1000년 전부터 그 물을 마신다”고 전했다. 데레사와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러나 오늘날 지리산 물방울 따는 방법을 사구법에서 천공법(드릴을 사용하고 고무 호스를 통해 산 아래서 물을 받음)으로 고쳐주고 간 것은 데레사와의 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