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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름다운 비행’ 하니 세상이 온통 자유구나!

입력 | 2002-04-04 11:22:00


노을이 지는 하늘 위로 한 소녀가 비행기를 몰고 그 뒤를 따라 15마리의 거위(영화평론가 듀나에 의하면 캐나다 기러기)가 V자를 그리며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비행’(원제 Fly Away Home)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엄마를 잃은 한 소녀(에이미)가 인간의 무분별한 늪지대 개발로 어미를 잃은 야생거위 알을 부화시키고, 그들을 다시 자연상태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환경보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에이미의 비행은 어미를 대신해 거위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국내에 이 아름다운 비행에 감동해 초경량 항공기를 타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동호회에 신참이 들어오면 ‘아름다운 비행’을 보았느냐는 질문부터 던진다.

영화 속의 그 장면을 직접 연출해 보기 위해 서해안에 있는 어섬비행장으로 향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비봉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남양, 송산을 거쳐 마산포에 이르면, 에어로피아항공의 어섬비행장이 나온다. 그러나 반들반들하게 닦인 거대한 활주로 대신 울퉁불퉁한 흙바닥인 게 초심자의 눈에는 아무래도 미심쩍다.

오늘의 체험비행을 맡아줄 교관은 에어로피아항공의 대표이사인 이규익씨(37). 공사 36기인 이교관은 1500시간 비행 기록 보유자다. 2년 전에는 안산비행장에서 어섬으로 자신의 항공기를 타고 출퇴근했는데, 한 방송사가 이를 소재로 ‘하늘을 날아 출퇴근하는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레포츠▼

이론적인 설명은 뒤로하고 곧장 비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초경량 항공기 조종 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10분 정도 체험비행을 시킨다고 한다. 한번 하늘을 날고 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단독 비행’을 하고 싶다는 의지에 불타게 된다.

비행에 앞서 솜을 넣어 체온을 보호해 주는 비행복으로 갈아입고 그 위에 다시 점퍼를 입었더니 몸이 두둑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과학 상식. 초경량 항공기는 고급 여객기가 아니므로 틈새로 새들어오는 바람을 어쩌지 못한다. 다른 비행기에 탄 사진기자는 아예 문짝을 떼고 촬영에 들어갔다.

막상 좌석이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2인승 비행기의 조종석을 보니 너무 좁다. 난감해하는 표정을 재빨리 읽은 이교관 왈 “110kg까지 태워봤으니 걱정 마세요.” 참고로 노련한 교관은 이륙 거리와 연료 소모량만으로도 부조종석에 앉은 사람의 체중을 알아맞힌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것.

착륙 직전 이교관이 “며칠 전 한 방송사 리포터가 이륙하자마자 내려달라고 울고불고 해서 촬영도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며 은근히 겁을 준다. 그러나 가슴 졸이던 이륙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예상 밖으로 초경량 항공기는 100여m를 달려 솜털처럼 가볍게 하늘을 박차고 오른다. 미리 이야기해 두지만 착륙은 더욱 사뿐해서 마치 매트리스에 앉는 것 같다.

이륙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유유히 발 아래 경치를 즐긴다. 최근 시화호 주변이 초경량 항공기 비행구역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매립지 자체가 천연 활주로인 데다 해안을 끼고 있어 바람이 일정하고 제부도, 대부도를 바라보며 경치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교관은 생초보인 기자에게 잠시 조종간을 맡겼다. 하늘에는 교통체증이나 끼어들기가 없으므로 비행기 조종은 오히려 자동차 운전보다 안전하다. 고도를 높이고 싶으면 스틱을 앞으로 당기고, 내려가고 싶으면 아래로 미는 단순 동작이다. 왼쪽, 오른쪽 방향 틀기도 자동차 운전과 비슷하지만 워낙 민감해서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움직인다.

이렇게 고도 500피트 이하를 유지하며 시속 100~200km 사이에서 비행을 즐기는데, 처음에는 이리저리 회전하는 바람에 방향감각을 잃는 경우가 있으므로 지형지물을 눈에 잘 익혀두어야 한다. 잔잔하게 비행하다 급커브를 틀거나 급하강을 시도하면 동체가 진동을 하면서 마치 롤러코스터에 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노련한 비행교관이 제공하는 서비스.

발 아래 펼쳐진 제부도 포도밭을 보니 한 승마 애호가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말을 타고 내려다보면 세상을 제패하고 싶어지죠.” 말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지상 150m 높이의 비행기 안이다. 직접 조종간을 잡으면 세상이 내 품에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탑승 40분 동안 기자는 ‘위험한 상상’에 빠질 수 있었다.

비행기는 무조건 위험하다고 꺼리는 분들에게 충고 하나. 초경량 항공기는 엔진이 꺼지는 위기 상황에도 700m 가량 활공하면서 착륙지점을 찾을 수 있다. 아예 비행기 동체에 낙하산을 단 것도 있다.

초경량 항공기는 정신적인 레저 활동이어서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나이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다. 지난해에는 에어로피아에서 교육받은 73세의 황인근씨가 면허를 따는 데 성공했다. 단, 정식 면허는 14세 이상이 돼야 가능하다. 1988년 이후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초경량 항공기는 동호회 인구만 2000명이 넘고 등록 비행기도 200대를 넘어서면서 일반인을 위한 레저 활동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비행기는 주로 프랑스와 미국으로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한다. 국내에서 개인용 초경량 항공기를 구입하려면 3000만~5000만원쯤 필요하다. 보통사람은 꿈도 꾸기 어려웠던 개인 비행기 소유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에어로피아 회원 중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평소 10년 된 경승용차를 끌고 다니지만 비행기를 소유한 사람도 있다. 단독비행이 가능하면 동호회 회원끼리 비행편대를 만들어 어섬에서 대천 앞바다까지 날아가(약 20분 거리) 차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체험비행은 엄청난 유혹이다. 누구나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한동안 단독비행과 자신의 비행기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 김현미 주간동아기자 > khmzip@donga.com

◇ 초경량 항공기 타기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 나오는 비행기는 행글라이더와 조종 방식이 유사한 ‘체중 이동형’이다. 초경량 항공기는 형태별로 ‘체중 이동형’과 우리가 흔히 보는 비행기 형태의 ‘타면 이동형’, 작은 헬리콥터 스타일의 ‘회전 날개형’ 세 가지로 분류된다. 유럽에서는 형태에 관계없이 초경량 항공기를 모두 ULM(Ultra Light Motorized Glider)으로 표기하고 미국에서는 ULP(Ultra Light Plane)로 표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체중 이동형을 ULM으로, 타면 이동형을 ULP로 구분해 사용한다.

초경량 항공기란 탑승자와 연료 및 비상용 장비의 중량을 제외한 자체 중량이 2인승 225kg 이하, 1인승 150kg 이하인 비행기를 가리킨다. 초보자는 교관이 조정하는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체험비행을 하는데, 비용은 대략 10~40분에 3만~10만원이다. 항공기를 직접 조정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 20시간의 비행 실습 후 단독비행이 가능해지면 교통부 산하 초경량항공기협회가 주관하는 이론·실기 시험을 치른다. 자신이 교육받은 활주로에서 자신이 사용하던 비행기로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합격률이 높은 편. 클럽마다 교육비가 조금씩 다르나 대략 250만원(교육비, 연회비, 보험료, 연료비 포함)이면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면허를 딸 수 있다. 면허가 있는 사람은 비행기를 빌려 타는 데 시간당 4만5000원(연료비 3만원 포함)이다. 문의: 에어로피아 항공(031-347-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