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계의 병폐는 ‘끼리끼리’ 해먹는 현상 설계 공모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상 설계 공고가 나면 응모자들은 이리저리 심사위원들을 알아내 자신의 응모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나면….
현실이 이렇다 보니 힘없고 줄 없는 사람은 한두 번 시도하다 제풀에 지쳐 포기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르다. 건축가 이충기(李忠基·42) 한메건축설계사무소장.
그는 1996년부터 매년 두세차례 이상씩 꾸준히 현상 설계 공모에 응한다. 심사위원을 전혀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당선될 리 없다. 정확히 말하면 2등은 종종 하지만 1등은 애초부터 어렵다. 그에겐 학연 인맥도 필요 없고, 남의 작품 흉내내는 표절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 필요도 없다. 믿는 것은 오직 양심과 실력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떨어질 게 뻔한데 뭐 하러 응모하느냐”고 핀잔 섞인 말을 건네곤 한다. 이 소장의 대답.
“저라고 왜 유혹이 없겠어요. 지도교수께서 심사를 맡은 적도 있었습니다. 평소 연락도 안하다가 현상 공모 때 불쑥 찾아간다는 게 좀 우습지 않나요. 아마 제 성격 탓인가 봐요.”
떨어질 것 각오하고 꾸준히 현상 설계에 응모하는 이유에 대해 이 소장은 “현상 공모는 건축계의 축제여야 한다. 축제가 되려면 독창적인 작품을 갖고 직접 참여해야 한다. 속 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참가해서 바꿔야 한다”고 답한다.
김영섭 건축문화설계사무소장은 “이 소장은 깨끗한 손”이라면서도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그의 회피 이유가 인상적이다.
“제가 이 소장의 대학 선배입니다. 그러니 이 소장을 칭찬하면 선후배가 짜고 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더 이상 노 코멘트입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남의 작품 흉내내지 않고, 그렇게 일하다 보니 저절로 남는 것은 실력이다. 이 소장이 1999년 설계한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상하행선 금산 휴게소 두 곳은 환경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휴게소 건축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