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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윤용만/한 표가 기회비용 줄인다

입력 | 2002-04-04 18:26:00


좀 딱딱한 얘기 같지만 경제학의 기초개념으로 ‘기회비용’이라는 말이 있다. 기회비용이란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하면 포기해야만 하는 다른 행위의 가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대학생의 기회비용은 등록금과 책값뿐만 아니라 대학에 재학 중이어서 포기하여야만 하는 다른 경제행위도 포함한다.

만약 학교에 다니지 않고 요즘 한창 잘나가는 벤처회사를 창업해 많은 돈을 벌었다 하자. 그러면 벤처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을 포기하고 강의실에 앉아 있으니 대학 재학에 따르는 기회비용은 대단히 크다.

다른 예로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의 경우 만약 군에 입대하였더라면 군복무에 따른 기회비용은 연간 1300만달러가 넘을 것이다. 그러니 많은 스타급 선수들과 연예인들이 기를 쓰고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 몇년 뒷걸음질▼

이같이 우리는 경제행위를 함에 있어 단순히 그 행위를 하는 데서 발생하는 비용만을 생각하는데 사실 기회비용으로 개념을 확대하면 그 비용은 대단히 커지게 된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고 있는 이러한 기회비용을 잘 인식하고 활용하면 훌륭한 경제행위를 영위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각설하고, 세계의 공업화된 국가 중 우리나라처럼 기회비용이 큰 국가도 없을 것이다.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자. 공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교육이 판을 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가계소득의 차이를 따지기에 앞서 영재교육을 한답시고 영어와 예체능교육 등에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있다.

소위 촌지는 접어두고라도 사교육에 드는 비용이 가계소득을 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부유한 집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액과외를 받으며, 그렇게 부유하지 못한 집에서는 어머니가 파출부를 해서라도 과외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사교육 비용이 이 정도이고 고3생을 두고 있는 집안은 소위 ‘고3병’으로 일컬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또한 대단하다.

예를 들어 좋은 학군 찾아 이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 유명 사설학원이 150여군데나 몰려 있다는 서울 대치동의 경우 32평형 아파트 매매가가 5억5000만원이고 전세가는 3억원 정도 한다니 그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 5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최소한 200만원 이상의 예금이자를 포기하는 것이니 이 또한 대학 입시를 위한 기회비용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개인의 기회비용이 이 정도면 사회 전체의 기회비용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어디 이러한 비용이 교육 분야뿐이겠는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나 회사 하나 차리기 위한 각종 인·허가를 취득하는 데 따르는 비용이 얼마며, 크게는 각종 이권을 따내기 위해 정치인에게 또는 고위 관료에게 건네는 소위 검은돈은 얼마이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유흥업소가 소방서, 파출소, 구청 등에 상납하는 떡값은 또 얼마이고…. 그러니 또 업주는 뜯긴 비용을 회수하려 매상을 적게 신고하거나 탈세를 하게 되고….

이런 게 어디 우리 생활의 특정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개인과 개인의 거래에서도 부지기수다. 하여튼 열거하려면 끝도 없는 비리로 우리가 치르는 사회적 기회비용은 대단히 크다.

▼감상적 인기에 표 던진다면…▼

우리나라와 같이 단일화된 종교도 없고 상징적이라도 구심점이 없는 국가에서는 결국 시민에 의한 사회발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개혁과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비용을 많이 치를 수밖에 없다.

이같이 사회적, 개인적으로 기회비용이 큰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거듭나야 된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그것이 경제적이건 정치적이건-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 어떠한 기회비용을 치르게 하는가에 대해 항상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줄줄이 선거가 시작될 터인데 항상 선거가 있을 때마다 되뇌는 말, 제발 “우리가 남인가”와 같은 지역감정이나 감상적 인기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하지 말고 비전을 제시하고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커다란 덤터기를 쓰고 또다시 몇 년간 커다란 기회비용을 치러야만 할 것이다.

윤용만 인천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