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건설교통부는 그 해 초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인천국제자유도시 개발계획을 공식 백지화했다. 인천공항공사가 해외홍보 자료에까지 넣었던 원대한 계획이 1년도 되지 않아 ‘없던 일’이 된 것. 40억달러의 외자가 들어온다던 장밋빛 청사진은 ‘한건주의’ 정책의 상징으로 세간에 오르내렸다.
4일 정부가 발표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 실현 청사진을 들여다보며 비슷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민자와 개발이익 환원으로 조달한다’는 짧은 문장뿐이다.
청사진 말미에는 “어떤 정치일정에도 흔들림 없이 국가역량을 모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현 정권 임기 말에, 그것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청사진은 벌써 “선거용이 아니냐”는 시비를 낳고 있다.
수도권 서부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려는 청사진은 수도권 경제력 집중이나 지역균등 발전 등 기존 정부정책노선의 전면적 수정을 의미한다. 지방경제의 외자흡입력이 형편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청사진은 지역균형발전 정책과의 연계란 주제로 30쪽 가운데 2쪽을 할애했다. 수도권 서부축을 개발하면 충청권 등 중부내륙까지 개발이 확산된다는 식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개발 계획을 쓸어 담아 ‘표심’을 얻으려 했다고 풀이하면 기자의 지나친 의심인가. 실제로 부산시 고위관계자는 재정경제부로 찾아와 “개발계획에서 부산을 소홀히 하면 선거는 하나마나”라고 경고까지 했다는 후문.
청사진은 2020년을 목표시한으로 정했다. 정권이 4차례는 더 바뀌어야 실체가 느껴질 목표다. 엄혹한 국제경제 환경에서 정부가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비전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는 큰 안목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방선거 표를 얻겠다고 졸속 계획을 발표했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역사적 비판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다.
박래정기자 경제부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