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빌 브라이슨 저, 홍은택 역)이라는 책을 읽은 후 열심히 주변에 일독을 권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북부 메인주까지 애팔래치아산맥을 타고 산과 숲길을 무려 3360㎞나 걸어서 미 국토를 남북으로 종주하는 사람들의 여행기이다. 미국 태생으로 영국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던 저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조국을 제대로 알고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5개월이나 걸리는 도보등산길에 도전한다. 이 책은 그러나 단순한 등산이야기가 아니다. 자연과 환경보전에 관한 감동적인 호소문이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애팔래치아 트레일 그 자체였다. 우리 백두대간 남한구간(진부령∼지리산)이 670㎞인 점을 감안하면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이보다 5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이 책에 따르면 하이커들의 식수가 떨어질 만한 때에는 반드시 샘터가 나타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대개 하루 정도의 도보거리마다 하나씩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다. 또 적당한 곳에 꼭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1.6㎞ 안팎에 하나씩 동판에 새겨진 표지판이 마련되어 있는 식이다.
녹색연합이 15개월 동안 백두대간 훼손실태를 조사해 지난주 발표한 직후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이 즉각 후속조치를 내놨다. 요지는 등산인원을 대폭 제한하는 탐방예약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단측의 이 조치는 훼손의 책임이 전적으로 등산객들에게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훼손은 등산객 숫자가 많아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적정하게 있어야 할 안내판 취사장 야영장 등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훼손을 유발하거나, 훼손되어 가는 등산로를 제때 보수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자연을 찾아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도시인들의 산행을 막는 방법으로 자연을 보호하려는 것이 과연 당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일까. 그보다는 많은 사람이 자연을 찾아도 훼손되지 않도록 시설을 만들고 등반로를 보수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 보는 것처럼.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보전하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뒤에 올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한 자연이 오염되고 등산로나 시설이 훼손되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제한과 규제만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접근법 역시 행정편의주의적인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다름 아니다.
공단측의 발상이 잘못됐다는 것은 홍콩의 경우가 입증한다. 인구 밀도가 우리보다 더 높은 홍콩에는 구룡반도쪽에 100㎞의 매클리호스 트레일, 홍콩섬에 50㎞의 홍콩 트레일, 그리고 란타오섬에 100㎞에 이르는 란타오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등산로가 훼손된 곳에는 돌계단과 돌길을 조성해 가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제한 없이 자연을 즐기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공원공단측은 지난해 212억여원의 입장료 수입을 올렸으며 국고지원까지 합치면 약 916억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도대체 이 돈은 어디에 사용했을까. 공단측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 그래도 불가피하다면 규제는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 대중의 입장은 무시하고 대뜸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무원들에 대한 퇴출 예약제는 없는지 묻고 싶다.
정동우 사회2부장 fo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