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르네상스’ 가 오고 있는가?
최근 출판계의 각종 지표가 급격한 상향곡선을 그리면서 ‘책 권하는 사회’ 에 대한 희망섞인 전망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같은 ‘책 열풍’ 은 고속인터넷 확산과 TV 다채널화 등 디지털 환경속에 이루어진 아날로그 문화의 선전(善戰) 이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시너지 효과’ 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교보문고는 최근 광화문점의 3월 매출이 처음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포함해 이 회사의 같은 달 전국 6개 점포 전체 매출액은 총 185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3월의 154억원에 비하면 20% 늘어난 숫자다. 판매된 책은 총 161만 5000권. 책을 한줄로 쌓으면 63빌딩 높이(249m)의 130배나 된다.
교보문고측은 “새학기가 시작된 까닭도 있지만, 언론에서 독서 붐을 조성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많이 출간했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미화 실장은 “3월은 대개 교재, 참고서 위주의 판매가 이뤄지는 달이라 단행본 출판사로서는 비수기에 해당하는데 올해는 단행본 판매도 순조롭다” 고 말했다.
인터넷 온라인 서점 역시 지속적인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 의 경우 1999년 매출이 12억원에 불과했으나 2000년 150억원, 2001년 505억원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여왔고 올해 매출이 1300억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온라인 고객들의 구매자세도 예전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의 경우 고객 1인당 1년간 평균 도서구매 금액이 2000년에 9만6000원 가량이었으나 2001년에는 약 15만원으로 64% 증가했다.
알라딘 의 김명남팀장은 “온라인 구매자들은 배송료를 절약하기 위해 인기있는 베스트셀러 1권을 사면서 그동안 구매를 망설였던 다른 책을 함께 구매하는 것이 특징” 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점에서는 고객이 마우스 클릭만으로 여러 관련서적을 함께 훑어볼 수 있어 ‘충동구매’ 도 이루어진다. 서점 쪽에서도 독자의 구매행태를 분석해 관련도서를 추천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대표적 아날로그 매체인 책의 열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언론매체의 영향을 꼽는다. 1999년 동아일보가 최초로 매주 8개면의 북섹션 ‘책의 향기’ 를 내기 시작, 현재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이 북섹션을 발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간지의 북섹션 발간을 도화선으로 방송매체가 책 소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평범한 시민들이 그동안 ‘지적(知的) 소수’ 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책 사냥’ 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
최근 들어서는 방송이 ‘책 권하는 행렬’ 에 뛰어들어 붐을 주도하고 있다. MBC !느낌표 (토 밤 9·45)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는 매달 한권의 책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한 괭이부리말 아이들 (창작과비평사), 봉순이 언니 (푸른숲),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닷컴) 등은 각종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모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소개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는 방송직후 19위에 진입(동아일보·한국출판인회의 공동집계)한 뒤 4월 첫째주 베스트셀러 2위로 크게 뛰어올랐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 코너에 소개된 책은 한달에 30∼50만부 이상 팔려 종이가 없어 책을 못 찍는다라는 얘기마저 나돈다” 고 말했다. 1990년대 200∼300만가 팔린 밀리언셀러들도 한달에 30만부 이상이 팔린 적은 없었다는 것.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작가 최인호씨는 “긍정적인 측면도 물론 있지만, 일시적 열풍이 궁극적인 독자로 이어질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궁리의 이갑수 대표는 “방송의 책권하기는 이래도 책 안 읽을래 하는 협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독자들의 ‘문화적 다양성’ 이 책읽기 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점. 지난해 3월 이후 1년 동안 교보문고의 분야별 판매 증가 실적은 소설(17.1%), 종교(19.4%), 인문(14.8%), 정치(13.3%), 비소설(10%) 등으로 고른 증가를 보였다. 알라딘 의 조유식 대표이사는 이를 “독자들의 책 고르기가 점차 다양화, 고급화되는 양상” 이라고 분석했다.
‘책읽기’ 라는 문화트렌드가 확산되면서, 30∼40대가 인문학 서적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들녘)은 쉽지 않은 주제에 767쪽, 3만5000원이라는 분량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간 5개월만에 4만 5000부가 나갔다.
들녘의 박성규 주간은 “구매고객을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 30대 중심으로 고객층이 나타났다” 고 말했다. 박 주간은 또 “386, 486세대가 다시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예전에는 베스트셀러라는 단독 상품에 독자가 집중되었으나 이제는 다양한 주제로 독자가 널리 분포되는 고무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고 설명했다.
실제 ‘알라딘’ 에서 교양 부문의 연령별 구매비율을 조사해 보면 10대 6.4%, 20대 34.4%, 30대 41.9%, 40대 14.1%, 50대 2.2%로 30∼40대의 구매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출판 전문가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의 시너지 효과, 방송의 책권하기, 386세대의 인문학 회귀 등이 최근의 도서구입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고 분석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