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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칼럼]날개를 달자!

입력 | 2002-04-09 13:51:00


날개가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날개를 잃어 버렸다. 측면을 날카롭게 유린할 수 있는 강력한 기동력의 윙을 잃어 버린 것이다. 상대 수비수를 뒤에 달고 질주하던 선수들, 골 라인에 다다랐을 때는 어김 없이 센터링을 올려 주던 선수들, 그리고 때로는 상대편의 마지막 수비수까지 제치고 최후의 한 방을 갈겨버리던 선수들!

차범근처럼, 또는 변병주나 고정운처럼 질주하는 선수를 그리워하는 일면에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도 상당부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호쾌하게 질주하는 윙 플레이어의 모습이 한국 축구의 최대 무기였으며, 그런 선수들이 활약하던 시절에 우리는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 때도 지금과 똑 같이 '골 결정력의 문제'라든가 '어이없는 실점'이라는 표현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우리의 패인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측면 플레이를 무기 삼아서 상대 팀을 무너뜨릴 수 있었으며, 우리 팀이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측면을 내달리던 총알 탄 사나이들의 모습이 우리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향수를 읊어 보려는 것이 아니다. 측면의 중요성, 그리고 윙 플레이어의 역할과 중요성을 한 번 짚어 보려는 것이다. 대표팀의 최근 경기를 보면서 뭔가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셨는가? 혹시, 골 결정력의 문제가 아니라 측면에서의 답답함은 아니었을까? 중앙에서의 날카로운 스루패스가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측면의 열린 공간을 한 번에 뚫어 주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지는 않았던가?

과거 한국 축구가 선진화 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할 때, 측면 위주의 단순한 공격 패턴이 지적되곤 했다. 특히, 측면 공격수에게 뜀박질을 시키는 롱 패스 위주의 전술이 도마에 오르기 일쑤였다. 그땐 확실히 그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윤정환이 어슬렁 거리듯이 움직이다가 쿡! 찔러주는 전진 스루패스에 기립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똑 같은 롱 패스지만 상대를 허를 찌를 줄 아는 홍명보의 재치와 정확한 킥은 또 얼마나 멋있었는지… 하지만, 꼭 짚어 둘 것이 있다. 측면은 가장 손쉽고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격 루트이며, 또한 가장 확실한 공격 전술 중 하나라는 것이다. 특히, 개인기나 전술역량이 부족한 팀에게는 가장 요긴한 전술이 될 수 있다.

요즈음의 축구 경기에서 나타나는 측면 전술이나 윙 플레이어의 모습은 과거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는 측면의 넓은 공간에 공을 넣어 준 뒤, 공격수와 수비수가 볼을 놓고 경합하는 것이 주된 공격 방법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비교적 넓은 공간 속에서 플레이를 했다고 할 수 있으며, 조직적인 압박 보다는 1대1 맞짱뜨기 형태였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빠른 발과 돌파력을 갖춘 선수가 장땡! 그리고, 지구력도 중요하다. 즉, 적진으로의 전력질주를 경기 내내 몇 번이나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때문인지 중앙선 부근, 터치라인에 바싹 붙어서 전방으로 전진할 기회만을 엿보는 윙 플레이어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경기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T.T)

요즘은 과거에 비해측면 공격수에게 훨씬 많은 역할이 요구된다. 수비가담 요구가 커졌으며 과거에 비해 조직적인 압박이 심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스피드를 이용한 단독 돌파가 쉽지 않다. 순간적으로 공과 공을 가진 선수를 2중 3중으로 에워싸는 상황에서 스피드를 이용하여 돌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아예 공을 치고 나갈 공간 자체를 순식간에 없애 버린다. 스피드나 돌파력 못지 않게 세밀한 개인기나 전술적인 움직임이 더욱 중요해 졌다. 또한 윙백과의 공조가 중요하며 중앙에서의 플레이 비중도 높아졌다. 상대팀과의 치열한 미드필드 싸움에서 맞짱을 뜰 수 있는 강인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체력과 기동력, 그리고 전술 소화력이 첫째 조건이며, 과거처럼 스피드와 돌파력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이야기 하는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기능이 높아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런 변화의 과정과 혼란 속에서 한국 축구가 자랑하던 측면 플레이어 최대의 무기가 퇴화해 버렸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측면 돌파 후 센터링이라는 단골 메뉴만 고집한다고 욕을 먹었는데, 요즘은 도무지 측면에서 제대로 올라오는 센터링을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에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쓰리-톱 시스템에서는 전문적인 윙 플레이어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월드컵에서 만날 폴란드와의 경기를 한 번 가정해 보자. 폴란드 선수들은 침착하고 여유 있는 경기 운영과 날카로운 공격이 돋보인다. 수비는 비교적 깊숙이 끌어 내린 채, 굳이 미드필드에서부터 상대 팀과 주도권 싸움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골 에리어 밀집지역 외에는 상대 선수들에게 비교적 넓은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이나 일본처럼 기동력을 주무기로 하는 팀에게는 다소 약할 수 밖에 없는데… 한국에게 희망적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지극히 당연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폴란드의 빠른 역습에 의한 실점을 하지 말 것. 둘째, 골을 넣을 것! (너무 당연한가? 일단 수비는 접어 두자. 이거 못하면 정말 곤란해 지는 거니까!)

폴란드처럼 중원에서의 싸움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깊숙한 수비에 치중하는 팀을 상대로 골을 넣기 위해서는 측면 공략이 매우 효과적이다. 우리 또한 중원에서 불필요한 싸움을 하기 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상대 수비를 뚫고 전진해야 하는데… 측면 공략처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물론, 마라도나처럼 혼자 뚫고 들어가거나 브라질 같은 정교한 중앙 돌파도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의 한국 팀은 측면 플레이보다는 중원에서의 주도권 싸움에 치중하는 스타일이며, 측면에서의 날카로운 센터링이나 돌파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폴란드를 가볍게 제압할 때 보여준 경쾌하고 빠른 측면 플레이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빠르고 위력적인 측면 공략을 통해서 상대적으로 느린 폴란드의 수비진을 측면으로 분산시켜서 제압한 후에 중앙에서의 득점을 노렸다. 또는 측면으로 대쉬하는 위력적인 윙 플레이어를 막기 위해 수비진의 밀집 상태가 느슨해졌을 때는 나카타의 중앙 플레이가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요즘 들어 예전처럼 빠르고 날카로운 측면 플레이를 볼 수 없는 것일까? 측면공략은 공격 전술 중에서 가장 교과서적인 방법의 하나인데, 설마 그것을 버리는 것은 아닐테고…

우선, 현재의 팀 훈련 단계가 여전히 주도권 장악에 치중하기 때문에 측면을 활용하는 전술을 본격화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어제도 오늘도 히딩크 감독은 체력과 기동력, 선수들의 경기 장악 능력, 싸움닭 기질과 자신감 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 팀에 특화된 전술을 갈고 닦기 보다는 다양한 전술 소화력과 상황별 문제 해결 능력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몇몇 윙 플레이어들의 특징과 수준을 파악해둔 채, 전술적 담금질은 차후로 미루어 두었다는 해석이다.

음… 아무래도 좀 억지스런 해석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마땅한 윙 플레이어가 없다고 해 두자. (사실 이렇게 말하자면 16강이고 뭐고 상당히 암담해 진다. 황선홍이 신이라도 되나?) 선수진을 살펴보면, 그래도 몇몇 윙 플레이어가 보이기는 한다. 오른쪽은 송종국이나 차두리, 설기현 등이 윙 플레이어로 몇 차례 출력을 했다. 이중 설기현과 차두리는 스트라이커를 주요 포지션으로 하고 있으며 돌파력에 비해 센터링은 좀 투박한 편이다. 송종국은 제2의 유상철, 또는 중원의 마당발이 될 것 같다. 오른쪽 공격수로도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최태욱의 복귀를 좀 기다려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왼쪽은 이영표와 이을용이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이들 역시 전문 측면 공격수 스타일은 아니다. 득점과 연결될 수 있는 날카로운 센터링, 또는 깔끔한 마무리 패스나 슈팅 등이 아닌 부지런한 기동력을 주무기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부상중인 이천수나 고종수에게 기대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경우는 수비 가담력이나 기동력이 왕성한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만, 왼쪽 공격 루트는 확연히 살아난다. 또한 몇 차례의 경기에서 최태욱도 좋은 플레이를 펼친바가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왼쪽, 오른쪽 모두 쓸만한 윙 플레이어는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단순히 얼마나 좋은 윙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그 쪽으로 제대로된 패스가 나가는 것이 먼저니까. 이것이 안된다면? …상상하지 말자…)

앞으로 남은 기간은 약 50일! 이제부터 우리 대표팀의 측면 공격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를 살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수비력 안정, 체력과 기동력 강화, 강한 자신감 등을 통해서 강팀과 맞설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마련한 상태이다. 즉, 최소한 밀리는 게임은 하지 않는다는 수준에는 다다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점차 미드필드에서 최전방으로 연결되는 위협적인 패스의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이길 수 있는 카드를 다듬을 차례라고 생각된다. 득점을 올리는 것은 스트라이커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골 결정력 문제가 크게 우려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팀 공격의 아킬레스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세계 일류의 특급 스트라이커를 가진 몇몇 팀들을 제외하고는 월드컵에 나서는 모든 팀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정상급의 스트라이커들이 서너번의 찬스에서 골을 뽑는다면, 우리는 몇 번의 찬스가 더 필요하다는 수준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측면 공격의 활성화. 이것은 결국 공격의 빈도와 방법, 그리고 최종적으로 슈팅 찬스를 좀 더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골 결정력의 문제는 선수 개인의 역량과 당일 컨디션, 약간의 운에 맡기더라도 말이다. 측면을 예의 주시하자. 베스트 11에 좀 더 근접했을 때, 그리고 팀의 전술적인 틀이 좀 더 완성 되었을 때… 과연 우리 팀의 측면 공격이 얼마나 살아날 수 있는가를 눈여겨 보자.

한국 팀을 말할 때, "이것 만큼은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쓸만하다" 라고 평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그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갑자기 차범근이나 고정운 같은 빠르고 경쾌한 야생마를 다시 보고 싶은 것은 왜일까…

자료제공: 후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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