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4인방’이라는 테마를 기억하시는지….
북방외교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87년 말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 공사를 한다는 데서부터 이 ‘증시 재료’는 출발했다. 우선 대한알루미늄(2001년 상장폐지)이 공사에 사용될 알루미늄 새시를 전량 납품한다는 소문과 함께 연일 상한가를 나타냈다.
뒤이어 “공사에 동원되는 인부들의 신발을 납품한다”는 소문에 고무신 제조업체 태화가, “인부들의 간식이 호빵으로 결정됐다”는 소문에 삼립식품이, “인부들이 빵 먹다가 체하면 훼스탈이 소화제로 제공된다”는 소문에 한독약품이 주가상승행진을 했다.
논리전개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4인방의 주가는 올랐고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상승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물론 얼마 안돼 주가는 거품처럼 가라앉았다.
한국 증시의 ‘테마’는 대체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구제역이나 광우병이 터지면 어김없이 닭고기와 참치 통조림 제조업체의 주가가 올랐다. 구제역과 광우병이 이들 회사 실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때가 더 많았지만 그래도 주가는 올랐다.
지난해 뉴욕 9·11 테러가 터지고 금값과 유가가 오른다는 전망이 나오자 정유회사와 금광 회사의 주가가 올랐다. 당사자들이 나서서 “우리는 이번 일로 매출이 늘지 않는다”고 해명해도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여북하면 방학을 앞두고 ‘청소년 탈선 수혜주’라는 이름으로 본드, 부탄가스, 피임약 제조업체 주가가 오르리라는 장난스러운 얘기까지 나돌았을까.
▽좋은 테마란 이런 것〓테마란 ‘주목받을 만한 종목을 특정한 주제로 묶은 것’이다. 흩어져 있으면 기억하기 어려운 종목들을 하나로 묶어 투자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는 것이 테마의 역할인 셈.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좋은 테마의 조건은 △투자자에게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고 △산업과 기업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며 △‘한탕주의 세력’이 아닌 건전한 투자 세력을 모으고 △합리적인 논리를 통해 묶이는 것.
미국 메릴린치가 2000년 제시한 새 천년 테마인 △세계화 △새로운 소비계층 등장 △재택(在宅)근무 △젊음의 샘 △리스트럭처링 등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좋은 테마의 예.
따라서 최근 한국 증시에 등장한 ‘조정 장세에서 강세를 보였던 주식’ ‘증시가 5일 이상 하락했을 때 주가가 오른 종목’ 등은 함량 미달 테마라는 지적. 옛날 조정장세에서 주가가 어떠했든 지금 주가가 오를 수 있는 기반이 있느냐가 중요한데 그 분석이 아예 없다.
이런 테마는 주가가 올랐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급락하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테마에 편승했다가는 주식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새로운 테마들〓그러나 올 들어 한국 증시의 테마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Up grade) 시킨 ‘진짜 테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증권은디스플레이(Display), 디지털(Digital), D램 등 정보기술(IT) 분야의 유망 업종을 묶어 ‘신 3D테마’라고 이름했다. 우선 테마의 근거가 분명하다. 경기회복 전망과 함께 전자업종을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확대되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종목이 신 3D라는 예상. 또 이 세 분야에서 재고조정되는 모습이 뚜렷해 앞으로 이익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3D’라는 친숙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투자자들이 이 테마를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증권이 지난주 내놓은 ‘브랜드칩(Brand Chip)’ 테마도 최근 장기투자가 늘고 있는 추세를 잘 포착한 테마로 평가받는다. ‘올해는 신라면 애니콜 EF쏘나타 등 시장에서 절대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진 기업이 증시를 이끌 것’이라는 게 테마의 내용.
이 테마는 최근 증가 추세인 우량주 장기투자자들에게 ‘브랜드 가치’라는 우량주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또 “양을 중시했던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보다 질을 중시하는 신세대가 주요 소비계층으로 등장하면서 고브랜드 고가격 고품질이 강조되고 있다”는 설명은 브랜드칩 테마의 근거를 명확히 해 준다.
블루칩(핵심우량주) 옐로칩(우량주) 등 기존의 친숙한 테마와 비슷한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테마의 인지도를 높인 것도 강점. 또 브랜드 가치 테마는 하루 이틀 짜리 테마와 달리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매수와 매도 시점을 찾는데 폭넓은 선택권을 주고 있다.
장영수 동부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유행하는 테마의 성격이 작전에 이용되느냐, 정석(定石)투자에 도움이 되느냐는 그 증시의 전반적인 수준과 관련된 문제”라며 “과거와 달리 근거가 충분하고 기업의 실력에 기초한 내용 있는 테마가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증시가 발전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코스닥 3D 테마 유망 종목3D기업내용디스플레이파인디앤씨시장 선두업체, 영업이익률 27%우리조명제품 국산화에 따른 이익 증가 예상디지털이앤텍고부가형 제품의 매출 비중 확대로 수익성 개선 전망모아텍일본시장 진출 등 고객 기반 확대한국트로닉스삼성전자 휴대전화 단말기 판매 증가에 따른 수혜D램이오테크닉스신규 고가 제품이 매출에 반영돼 올해 실적 큰 폭 증가 예상삼우이엠씨반도체 및 TFT-LCD 산업 설비투자 증가에 따른 수혜 예상자료:삼성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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