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만난 어느 영화학자는 “내놓고 하는 도둑질은 패러디고, 몰래한 도둑질은 표절”이라고 패러디와 표절을 재미있게 구분하더군요.
오늘 개봉하는 ‘재밌는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공개적으로 도둑질한’ 영화죠. 국내 최초의 본격 패러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는 한국 영화 28편을 비틀었지요.
끝나기 1, 2분 전 ‘제작 박찬호, 기획 김병현, 감독 히딩크, 편집 가위손…’이라는 가짜 엔딩 크레딧도 나옵니다(하지만 진짜로 영화가 끝나는 것으로 착각한 극장측이 시사회때 객석의 불을 켜 버리곤 하자 영화사측이 이 장면을 빼버렸답니다).
문득 저작권 문제가 궁금해졌습니다. 제작사에 물어보니 박찬호 선수나 히딩크 감독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군요. 인용된 원작의 감독이나 제작사측에도요. 다만 감독 및 제작사 관계자를 위한 시사회 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암묵적 사후 승인’을 받은 셈이죠. 영화사 측은 “할리우드의 패러디 영화도 원작에 대해 사전 동의나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주장 하더군요.
영화 삽입곡의 경우 음반사와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일일이 동의를 구했답니다. 하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삽입됐던 그룹 ‘비지스’의 ‘할리데이’는 음반사의 허락은 받았으나 비지스측이 거부했죠. 할 수 없이 영화사측은 비지스의 노래 대신 연주곡 ‘할리데이’를 넣어야 했지요. 웃자고 만드는 장난같은 패러디 영화도 만드는 과정은 장난이 아니죠? ^^
사실 패러디와 단순 인용, 혼성 모방, 표절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지요. 법적으로 따져보면 패러디냐 아니냐가 문제더군요. 지난해 서태지가 자신의 곡 ‘컴백홈’을 갖고 ‘컴배콤’을 부른 가수 이재수와 법정에서 벌인 저작권 다툼이 그렇습니다. 당시 법원은 논란 끝에 “비평이나 풍자가 아니라 원곡의 특징을 흉내내 단순한 웃음을 자아내는 만큼 패러디가 아니다”라며 서태지의 손을 들어줬었죠. 하긴 원작자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을 놀림감으로 삼는 패러디가 만족스러울 리 없겠지요.
그렇다면 ‘재밌는 영화’도 저작권이나 명예훼손 소송에 걸릴 가능성이 있을까요? 음.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더군요. 왜냐고요? 이 영화에 꽤 많이 인용된 어느 영화의 제작자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농담했다네요.
“소송을 걸고 싶어도 오히려 영화 홍보가 돼 대박 터지면 배 아플까봐 절대 안할란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