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최근 백남준미술관을 건립키로 한 것은 무엇보다도 백남준 예술을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차원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백남준 예술의 구심점을 제3국이 아닌 그의 고국에 마련하여 보다 항구적인 문화정책의 우산 아래 두었다는 사실이 백남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안도감을 줄 것이다.
백남준미술관을 만들자는 여론은 국내에서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제기되어 왔으며 그동안 김포시와 올림픽미술관, 대구시 등이 이러한 포부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왔었다. 그리고 이 기관들은 실제로 백남준으로부터 작품을 산발적으로 매입하기도 하였고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웹사이트까지 운영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시점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백남준이라는 이름과 그를 둘러싼 열띠고 자극적인 분위기만으로 지금까지 선진제국들이 이룩해놓은 거대한 문화인프라들을 단숨에 따라잡으려는 과욕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짐들은 이미 미술관 성사과정에서부터 일부 타나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관이란 단순히 작품 50∼60 점을 매입해 전시해놓았다고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미술관이 설립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타당성 검토와 함께 그 학문적 연구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인적 자원이 필요하고 미술관 유지를 위한 재원확보, 관람객 유치를 위한 고도의 문화정책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기존의 백남준 연구기관이나 작품소장기관과의 연계성 검토, 차별성 확보 등이 선행되어야 백남준미술관의 미래를 위한 방향이 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미술관의 위상과 질을 결정하는 작품 매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백남준에 관한 사전연구 없이 작가 측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만을 받아들일 경우 미술관이 특정 경향이나 시대에 경도될 가능성이 높다. 작품의 선정이나 선택권은 미술관의 방향을 자주적으로 설정하고 관객문화를 이끌어 가기 위한 중요한 문화정책에 해당한다.
경기도의 발표를 보면 백남준이 구겐하임미술관 전시회에 출품하였던 것을 모두 사들이는 것으로 작품의 질을 대신하려 한다는 인상이 짙다. 구겐하임이 내걸었던 전시의 미학적 기준은 백남준과 플럭서스, 비디오와 퍼포먼스, 그리고 대중접대방식으로서의 비디오를 검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백남준미술관은 백남준의 절정기 작품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히려 백남준과 한국미와의 결정적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작품들을 소장하여 외국과의 차별화를 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은 백남준이 직접 생산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의 조수들이나 주변사람들이 디자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질적 평가가 매우 복잡한 실정이다.
노르웨이는 뭉크 미술관을 통하여 1년에 3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피카소미술관, 루마니아의 브랑쿠지미술관 등도 단일 예술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이지만 각기 그들의 조국을 세계적인 문화지형도에 올려놓은 전설적 문화유산들이다.
백남준이 처음 개척하여 시조가 되었던 예술과 테크놀러지, 그리고 비디오 예술은 이미 선진 제국들이 유사한 형식의 미술관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그러나 그 시조인 백남준 예술을 미술관으로 수용한 것은 그의 조국이 처음이다. 따라서 백남준 자신도 예술가적 기질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고국이 자신에 관한 최고의 작품을 소장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학문적으로 진귀한 자료를 기증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도는 수십 년 간 국내외 무대에서 백남준 예술을 전문적으로 다룬 국내 화랑들을 통하여 작품 수장을 위한 노하우를 터득하여야 하며 관계전문가들을 통한 건축설계에 관한 자문이 무엇보다도 필수적이다.
이용우(뉴욕매체미술관장·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