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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一犬吠形(일견폐형)

입력 | 2002-04-14 17:43:00


一犬吠形(일견폐형)

吠-짖을 폐 捏-주워 모을 날潛-잠길 잠 雷-천둥 뢰 歪-비뚤어질 왜 訛-그릇될 와

‘四寸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거나 ‘못 먹을 호박 찔러나 본다’는 따위의 俗談은 괜히 남 잘 되는 것을 두고보지 못하는 우리네 고약한 心性(심성)을 잘 말해준다. 四寸이 잘 되어도 그럴 판인데 하물며 남의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칭찬과 격려는커녕 비난과 험담이 더 많다.

더 심한 경우, 없는 것까지 捏造(날조)해 발설하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도 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자로는 駟不及舌(사불급설)이라고 한다. 駟란 말 네 마리가 끄는 수레로 무척 빠르다. 그처럼 빠른 수레도 인간의 혀는 따라 잡지 못한다는 뜻이다.

王符(왕부·108∼174)는 東漢(동한) 말기의 사상가다.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데다 열심히 공부해 큰 抱負(포부)를 지녔지만 때를 잘못 만났다. 다 알다시피 東漢末期라면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대로 우리도 잘 아는 소설 三國志(삼국지)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온갖 부정이 난무하고 邪術(사술)이 橫行(횡행)했다.

그러자 王符는 일찌감치 벼슬하는 것을 포기하고 憤世疾俗(분세질속)하면서 自稱(자칭) ‘潛夫’(잠부)라 하고는 隱居(은거)하면서 著述(저술)에 힘썼다. 여기서 나온 潛夫論 10권은 대표적인 著述로서 儒敎(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治國安民(치국안민)의 方策(방책)을 제시한 일종의 政治論集(정치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당시에도 근거 없는 비방과 모함이 판을 쳤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一犬吠形, 百犬吠聲”(일견폐형, 백견폐성)-개 한 마리가 물체를 보고 짖어 대면 다른 개 백 마리는 그 소리만 듣고 따라 짖는다.

근거 없는 말에 附和雷同(부화뇌동)하는 당시의 사회상을 비판하고 있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事實이 歪曲(왜곡)되어 전해질 가능성도 매우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씩 訛傳(와전)되다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실 하나가 捏造되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王符는 이렇게 말했다.

“一人傳虛, 萬人傳實”(일인전허, 만인전실)-한 사람이 거짓을 전하면 수많은 사람의 입을 거치는 과정에서 訛傳에 訛傳을 거듭해 나중에는 眞實인 양 굳어지고 만다.

근거 없는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말해주고 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