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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광두/'경제체질 강화' 당장 나서라

입력 | 2002-04-14 18:59:00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도 크게 달아오르고 있다. 2001년 현재 우리 국민소득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4%였다. 또한 지난해 4·4분기 중 민간 소비의 경제 성장 기여율은 84.8%였다. 수출과 투자가 부진했는데도 우리 경제가 지난해 3·4분기 이후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민간소비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3·4분기 중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1.8%였으나 민간소비 증가는 전년 동기 대비 3.4%였다. 1980년 이후 이렇게 민간 소비가 국민 소득의 성장률을 큰 폭으로 상회한 것은 1989년과 지난해뿐이다. 1989년에 국민소득은 6.1% 성장했고, 민간소비는 10.1% 증가했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버팀목이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것이 받쳐주는 힘으로 우리 경제가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1989년 이후의 우리 경제를 되돌아볼 때 현 상황을 무작정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심상찮은 민간소비 위주 성장▼

89년의 민간소비 증가는 주가 상승, 부동산 가격 상승, 88올림픽 특수 등에 의해 나타났고, 재정과 금융의 팽창 정책이 그 여건으로 작용했다. 89년의 종합주가지수는 연평균 918 수준으로 88년의 693보다 크게 상승했다. 89년에 땅값이 전국 평균 32%나 상승했으며, 아파트 등 주택 가격은 폭등세를 보여 분당 등 신도시의 건설을 탄생시켰다. 재정정책은 88년의 긴축 기조에서 89년에는 확장으로 바뀌었고, 금융정책은 팽창 기조를 유지하였다.

근래의 민간소비 증가도 유사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주가 상승, 부동산 가격 폭등은 물론 정부가 재정·금융정책을 경기 부양의 입장에서 운용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저금리와 가계 대출의 확대라는 요인은 89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현상이다. 2001년 말 현재 가계부채의 잔액은 341조원 수준으로 2000년 말 대비 28% 증가했다. 2001년의 국민 소득 증가율은 3% 정도였다.

그런데 89년 이후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었던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86년부터 88년까지 나타났던 경상수지 흑자의 흐름은 89년의 53억달러 흑자를 끝으로 90년에는 20억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적자의 크기는 그 후 점차 확대되어 1996년에는 237억달러의 적자를 나타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97년 말의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92년의 경기 침체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89년까지의 경상 수지 흑자가 우리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때문이 아니라 3저와 같은 외부적 요인 때문이므로 이제부터는 어렵더라도 경제 체질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다수의 전문가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93년에 집권한 새 정권은 신경제 100일 계획을 온통 과감한 금융 팽창 정책으로 채워 거품을 통한 경기 부양을 추구했고 내실 있는 경쟁력 강화는 가볍게 취급되었다.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이 89년 이후의 흐름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의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의 정책적 대응에 따라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적 흐름이 전개될 수도 있다. 세계화시대에 있어서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경쟁력 강화 없이 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민간소비 위주의 경제 활성화는 이러한 국제경쟁력 강화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국내 소비시장에서의 경쟁이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보다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 자원의 흐름이 수출시장에서 내수시장으로 재배분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결과적으로 경상 수지의 적자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책 타이밍 놓치지 말길▼

정부는 하반기부터 수출의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그때 가서 정책의 입장을 재검토하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이것은 적절치 못한 판단이다. 정책의 지체효과(lagged effect)를 가볍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말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주택 가격 폭등은 2000년 이후 추진된 부동산경기 부양 대책의 결과다. 금융정책 변화의 정책 효과가 최소 6개월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정책의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다.

정책 당국이 현명하고 책임 있는 정책이란 경제 현상을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것임을 모를 리 없다.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광두 서강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