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Live)공연은 뜨고 음반(CD)은 진다. 올해 상반기 가요계가 ‘라이브 오르막 음반 내리막’ 양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라이브 공연장에는 팬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반면 새음반 판매는 예년보다 절반으로 줄고 있다. 이에대해 음반 유통사인 미디어신나라의 정문교 대표는 “가요계가 극심한 구조 조정을 거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음반 기획자들도 “이제는 TV용이 아니라 라이브 무대에서 통하는 가수들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라이브! 라이브!〓올해 상반기중 가장 공연이 많은 4월, 한달간 40여명의 가수들이 경쟁을 벌였는데 대부분 만원을 이뤘다.
4월초 공연했던 가수 양희은은 “매진된 8000여석중 20, 30대 관객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새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룹 ‘유리상자’는 20여일간 장기 공연인데도 7000여 전석이 공연시작 전에 매진됐다. 이들은 “돈 주고도 표를 사겠다는 부탁도 못 들어줄 형편”이라고.
20, 21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박효신도 이미 8000여 객석중 80%가 나갔고 신승훈의 서울 공연(1만2000석)도 매진을 앞두고 있다.
신승훈,박효신
‘베이시스’ 출신의 정재형은 오랜만의 컴백 무대인데도 3일간 공연이 매진돼 6월 앙코르 무대를 계획중이다. 이밖에 5월에도 조용필과 ‘시크릿 가든’ 등 대형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면서 ‘라이브의 봄날’은 멈추지 않을 전망.
윤창중 예스컴 사장은 “앞으로는 새음반 홍보나 팬서비스 차원에서 했던 공연이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 음반〓발라드 가수 K의 매니저는 최근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회의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K의 새음반 판매가 15만장에 불과해 기대에 못미치는데도 참석자들이 ‘대박’으로 인정했다는 것.
톱가수도 예외가 아니다. 예년같으면 밀리언 셀러에 육박하는 가수들도 50만장선에서 허덕대며 100만장 고지는 꿈도 못꾸고 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이런 추세라면 ‘god’가 한국 가요의 마지막 밀리언 스타가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문교 대표도 “매년 음반 시장의 파이가 조금씩 줄고 있으나 올해의 체감 지수는 예년의 몇배”라고 말했다.
▽왜 이같은 현상이〓음반 시장의 위축은 가요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타깃 소비자를 10대로 겨냥한 TV 위주의 가요가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10대들이 휴대전화나 게임으로 ‘놀이마당’을 옮기는데다 TV 음악에 식상한 20대 이상도 음반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
특히 mp3로 인한 음악파일의 자유로운 이동은 음반 위축의 가장 큰 요인으로 손꼽힌다.
유리상자, 정재형
임진모씨는 “저작권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그대로 복제할 수 있게 되자, 가요 소비자들은 음반이 도저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라이브 공연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CD라는 매체가 세계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수정 소니뮤직 코리아 사장은 “미국의 CD 시장도 휴대전화나 인터넷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매년 2, 3%씩 줄고 있으나 한국의 상황은 10대 위주의 시장과 높은 인터넷 보급률 때문에 최악”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라이브 무대는 팬들의 잔치를 넘어 여가 수단으로 자리잡는 추세. 라이브 공연장이 주는 낭만과 열정에 매료된 이들이 ‘영화’보러 가듯 무대를 찾는다는 것이다.
공연기획사 좋은 콘서트의 최성욱 사장은 “공연 콘텐츠가 팬들의 신뢰를 받기만 하면 빈 객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므로 이제는 공연의 품질 관리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생존의 조건은 가창력〓SBS ‘박수홍 박경림의 아름다운 밤’에서 기획한 ‘박고테 프로젝트’의 박경림이 음반을 내놓았다.
이런 사례는 흥행의 성공 여부를 떠나 ‘가수는 아무나 하는’ 국내 가요의 현주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가요 매니저들은 신인 발탁의 첫 조건으로 가창력을 꼽고 있다. TV용 외모를 앞세워 ‘기획’그룹을 양산한 이전 추세에 비하면 180도 달라진 셈이다.
좋은엔터테인먼트의 조대원 사장은 “이젠 노래 잘하는 가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가요계가 지난 10여년간 볼거리로 내세운데 비하면 요즘의 ‘반성’은 제대로된 추세”라고 말했다.
허 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