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참 별난 운동이다. 아무런 전력 변화없이 전년도 꼴찌가 샴페인을 터뜨리는가 하면 우승팀이 이듬해 꼴찌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짧은 국내 프로야구사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84년 우승팀 롯데가 앞의 경우에 해당한다면 96년 꼴찌 OB는 뒤의 경우다. 누군가는 이를 빗대 단체 구기종목인 야구 배구 축구 농구 중 공 크기가 작을 수록 이변의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그만큼 야구는 전력외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섬세한 운동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기자도 이제 어떤 경우를 보면 그에 어울리는 표현을 떠올릴 정도는 됐다. 지난 토요일 삼성과 한화의 대구경기를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경기는 삼성이 5-15로 크게 졌다. 하지만 점수차보다 경기 내용이 더 큰 문제였다. 삼성은 최강 수비라는 평가와는 달리 내외야가 5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자멸했다. 선발 김진웅은 1회 난타를 당하자 언제 교체해줄것이냐는 듯 벤치 눈치 보기에 바빴다. 실책을 한 선수들도 힐끗힐끗 더그아웃을 훔쳐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혈질인 김응룡 감독은 좌불안석. 지난해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봤던 것처럼 자주 자리를 비우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 감독이 18년을 지낸 해태는 이런 분위기의 팀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한창 체력을 자랑할 때인 40대 초반에 팀을 맡았으니 선수들이 느끼는 위압감은 지금보다 훨씬 더했을 게 자명하다.
하지만 해태 선수들은 최소한 김감독의 눈치를 보지는 않았다. 83년 첫 우승을 하고 난 뒤 요즘 말로 하면 보너스인 ‘축승금’이 적다고 구단주까지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 불고기를 새까맣게 태운 것은 이제 전설이 됐다.
‘군기반장’인 이순철은 찬스때 삼진을 당하고 나면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면서 감독석을 향해 오히려 먼저 욕을 해대는 오기를 부렸다. 이강철은 교체를 하려는 유남호 코치에게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마운드에서 한바탕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다. 장채근의 항명파동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개된 비밀이다.
지난해 팀을 옮긴 뒤 만년 준우승팀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절대 열세라는 두산에 어이없이 무릎을 꿇은 김감독.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첫 패배의 쓰라림을 겪었던 그는 어쩌면 옛 해태의 ‘버릇없는 후배들’이 그리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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