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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조덕현 '이서국으로…'展, 설치미술-인문학 만남 시도

입력 | 2002-04-15 18:18:00


현대 설치 미술과 인문학은 서로 얼마나 교유할 수 있을까.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덕현(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사진)의 ‘이서국(伊西國)으로 들어가다’전은 설치 미술과 인문학의 낯선 만남을 시도한 전시다. 단순히 한 곳의 설치 작품이 아니라 시집을 모티브로 비디오 설치 작품과 가상의 고고학적 발굴 현장을 연계한 프로젝트다.

단순히 미술관 공간내에 국한되지 않은데다 수십Km 멀리 떨어진 작품(발굴현장)간의 거리로 말미암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상력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조덕현도 “작품과 작품 사이의 연결 과정을 오가며 삶과 역사를 떠올려보는 것도 흥미로운 행위”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미술관과 가상의 발굴 현장 두곳으로 이뤄진다. 우선 경주 아트선재미술관내 비디오 설치 작품 ‘이서국으로 들어가다’는 2000여년전 존재한 작은 나라 이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서국은 현재의 경북 청도에 있었던 나라로 1세기경 신라에 복속됐다.

이 비디오 작품은 곧장 가상의 발굴 현장들과 연계된다. 하나는 경주 보문호 인근에 있는 발굴 현장으로 개 형상의 유물 수십기가 발굴된 것처럼 ‘설치’되어 있다. 발굴 현장 입구에는 낡은 철제 간판에 ‘매장문화재 발굴 조사중이므로 출입을 통제한다’는 경고문이 ‘설치’돼 있어 관객을 ‘역사’속으로 데려간다.

경주 보문호 인근 공터에서 조덕현의 설치 프로젝트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의 일환으로 개 형상 유물 발굴 작품이 '설치'되고 있다

‘이서국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이서국의 수도였던 청도군 화양읍 토평 1리(백곡동) 김일손 종가의 정자 부근에 설치된 또하나의 발굴 현장을 찾아봄으로써 완성된다. 프로젝트는 여기서도 경주 보문호 인근과 유사한 유물 형상들이 발굴된 것으로 가정하고 나선화 이화여대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가 이 유물에 대해 고고학적 엄밀성을 부여한다.

조덕현은 2000년 전남 영암의 ‘구림마을 프로젝트’이래 프랑스 파리의 국립 주드 폼므 미술관에서 펼친 ‘아슈켈론의 개’전을 통해 개 형상의 유물 발굴 프로젝트전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 이번 프로젝트는 청도가 고향인 시인 서림(대구대 교수)의 동명의 시집을 읽고 영감을 얻었다.

조덕현은 “개는 유목 민족의 상징으로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에 퍼져 있다”며 “이런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문화적 역사적 동질감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곧 핀란드에서도 같은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전시는 5월19일까지.

경주〓허 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