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은 요즘 직원들이 ˝우리가 소니를 이겼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심기가 불편해진다고 한다. 자신감은 좋지만 아직은 소니로부터 배워올 기술이 많아 교만해지는 것을 경계해야할 시기라는 것.
이런 기류 탓인지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초 월례조회 때 직원들에게 경기가 회복되고 실적이 호전됨에 따라 기강이 해이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겸손함을 잃지말고 위기의식을 지닐 것˝을 당부했다.
삼성의 최고 경영층이 이처럼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근 들어 포천 타임 비즈니스위크 등 세계의 권위있는 주간지 등이 삼성전자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삼성이 기술 마케팅 기업혁신에 있어 세계 유수의 첨단기업 대열에 들어섰다며 은근히 ˝소니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지난해 실적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는 자기보다 매출액이 3배로 많은 소니를 영업이익에서 10배 넘게 이겨버렸다. 이번 1분기에도 삼성전자는 유례 없는 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더욱이 앞으로 3년동안 소니는 구조조정에 신경 쓰느라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반면 삼성은 세계 각지에서 연구원을 채용해 R&D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 경영층의 우려는 바꿔 말하면 ´표정관리를 하고 내실을 다져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매출은 소니가 2배, 이익은 삼성이 10배 이상= 3월 결산법인인 소니는 이달중 기업설명회(IR)를 통해 지난해 실적을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소니가 하반기 IR에서 밝혔듯이 2000년도 매출에서 10%, 영업이익에서 90% 줄어든 수치 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라는 게 안팎의 전망이다. 이에 따라 소니의 지난해 매출은 530억∼560억 달러, 영업이익은 1억∼2억 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전자는 최악의 반도체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매출 244억1959만달러에 영업이익 22억2242만달러를 달성했다. 삼성은 또 올 1·4분기에만 지난해의 3분의 2 가량인 16억달러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적만 역전된 것이 아니다. 기업의 시가총액에서도 삼성전자는 소니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대우증권 이영원 연구위원은 ˝최근 작년 초에는 소니의 35%에 불과하던 삼성전자가 얼마전부터 소니를 능가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유있는 역전(逆轉)= 삼성전자가 승승장구하는 데는 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한몫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4조2000억원을 R&D에 투자했으며 올해는 3조원으로 투자비를 잡고 있다. 반도체 통신 가전 등 어느 사업부문 하나 투자에서 제외하는 것이 없다.
반면 소니는 일본의 장기 불황에 따른 여파로 R&D 투자를 거의 진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3년동안은 구조조정에 몰두하느라 투자를 동결하겠다는 발표도 한 바 있다. 이 와중에 소니는 삼성이 보유한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나 LCD(액정화면)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을 생산하지 못했고, 무선시장에서도 다른 기업을 뒤쫓아가는 형편이다.
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특허기술에서도 삼성이 소니를 앞질렀다. 최대 경쟁시장인 미국에서 삼성은 지난해 1450건을, 소니는 1363건을 획득했다.
연구원 숫자나 처우에서도 삼성이 앞선다. 삼성전자 윤 부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삼성이 소니보다 연구원의 숫자가 많다˝고 밝힌 바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는 1200여명, 외국 경영학석사(MBA)도 300여명 된다. 삼성에서 연구원은 최고의 대우를 보장받는다.
해외의 유능한 인력을 채용하는데도 유연하다. 삼성전자는 해외에서 박사급 인력을 매년 100명씩 스카우트한다. 삼성전자의 최고 경영진 가운데 한 사람인 진대제(陳大濟) 사장도 IBM 출신이다.
소니는 연구인력 현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해외파 출신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판´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기업 풍토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인력 ´푸대접´에 대해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소니 출신에서만 경영진을 뽑기 때문에 ´혁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브랜드 가치는 소니가 두배= 영국의 컨설팅회사인 인터브랜드는 최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소니가 150억달러로 1위, 삼성은 64억달러로 2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아직까지 최고의 브랜드 반열에는 오르지 못한 것.
그러나 삼성의 브랜드 인지도는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 휴대전화 DVD플레이어 PDA(개인휴대단말기)등 분야에서 삼성의 가치는 커지고 있다. 이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주가를 봐도 알 수 있다.
올 들어 삼성전자는 세계 주요 언론에 4차례 소개됐으며 진대제사장을 비롯해 황창규(黃昌圭)사장, 이기태(李基泰) 사장, 이윤우(李潤雨) 사장 등이 주요 국제 전시회나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반면 소니는 안도 구니타케(安藤國威) 사장이 지난해 가을 컴덱스쇼에서 연설한 것이 마지막이다.
이제 삼성은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시황에 따라 급변하는 사업구조를 안정화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소니는 매출의 67%나 되지만 이익률은 1% 선인 가전부문의 구조조정을 신속히 진행해 자사가 지향하는 네트워크 전문 기업으로 안착해야하는 것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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