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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리포트]해외여행-명품쇼핑 '행복한 인생'

입력 | 2002-04-16 16:24:00

파리시내 백화점 세일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프랑스 실버와 중년여성들


파리 15구에서 혼자사는 할머니 마리 조르주씨(72)는 지난해 10월 7박8일간 이집트 크루즈 투어를 다녀왔다.

패키지 투어 경비 8000프랑(약 140만원)을 포함해 한화로 200만원 가량이 들었지만 평생 벼르던 여행이어선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조르주 할머니는 재작년 바캉스 때는 모로코와 알제리를 다녀왔다.

조르주 할머니 뿐이 아니다. 프랑스 여행사의 해외 패키지 투어 참가자는 실버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이 눈에 띈다면 십중팔구는 신혼부부. 최근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가구 중 절반 이상이 바캉스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버층의 패키지 투어 참가 비율이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청 장년층보다 돈이 많기 때문. 프랑스에선 60세에 정년퇴직을 하면 최고 마지막 월급의 80% 수준까지 매달 노후연금을 받는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조르주 할머니도 매달 1700유로(약 195만원)를 받고 있다.

탄탄한 연금 시스템으로 안정된 노후가 보장되는 프랑스에선 빨리 퇴직하는 게 직장인들의 꿈이다. 프랑스의 전경련 격인 경영자협회(MEDEF)가 지난해 정년을 65세로 늘리려하자 30만명의 직장인이 시위를 벌여 이를 무산시켰을 정도.

프랑스 인구 6000만명 중 21% 가량이 60세 이상이다. 젊은 시절이야 자녀교육비, 집값 할부금 등 돈 나가는 데가 많지만 실버들이야 자식들 분가했겠다, 집과 차 있겠다 큰 돈들 일이 거의 없다.

자연히 여유있는 실버층을 겨냥한 산업도 붐을 이룬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는 실버들의 취향을 겨냥한 것이 많다. 파리에서는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한 실버 부부가 함께 장을 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화장을 하는 여자도 대부분은 실버들. 돈도 시간도 없는 젊은 여성들은 거의 화장을 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노년은 ‘돈도 힘도 다 떨어진 시기’가 아니다. 평생 노동의 대가를 향유하는 시기다. 프랑스인들이 노년이란 말 대신 ‘르 트루아지엠 아쥐(제 3의 시기)’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그늘은 있다. 자식과 가깝게 지내는 실버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홀로된 실버, 특히 기동이 어려운 실버들은 24시간 고독과 맞닥뜨려야 한다.

이들을 위해 프랑스 정부는 올해부터 자율권수당(APA)을 지급하고 있다. 기동이 어려운 실버들의 운신을 도와주고 말벗이 돼 줄 사람을 고용하는데 필요한 돈을 지급한다.

실버들 스스로도 각종 친목단체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일거리를 찾는다. 프랑스 민간협회에 등록된 자원봉사자 1100만명중 26.8%가 정년퇴직자들이다. 가끔 프랑스 신문이나 생활정보지에는 이런 광고도 나온다.

‘69세 여성. 집과 차 있음. 남자친구 구함’ ‘65세 여성, 집과 차 있음. 진실한 남자친구 구함. 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