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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축구이야기]본선 무대 뒤의 영웅들

입력 | 2002-04-16 17:19:00


우리는 로이 킨의 아일랜드를 보는 대가로 네덜란드를 볼 수 없게 됐다. 월드컵 지역예선의 빅카드였던 이 두 나라의 대결은 퇴장까지 당하며 수세에 몰린 아일랜드가 천신만고 끝에 축배를 드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 바람에 오베르마스, 반 데사르, 스탐 같은 슈퍼스타들은 자신의 나이와 다음 월드컵과의 함수를 걱정하게 되었다.

비운의 스타들은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수비수 두세명을 제치는 것을 즐긴다”는 우크라이나 축구 영웅 세브첸코. 작년 시즌 그는 ‘올해의 유럽 선수’ 유력 후보에 올랐지만 지금은 “한때 그 상에 대해 생각한 적 있지만 2002 월드컵 꿈과 더불어 모조리 사라졌다”고 통탄했다. 독일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세브첸코의 우크라이나는 패하고 말았다.

‘왼발의 달인’이라는 표현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써야 한다면 그 독점권을 영구히 사용해도 좋을 웨일즈의 라이언 긱스도 불운의 스타다. 잉글랜드의 에릭손 감독은 그를 “대표팀에 포함시키고 싶은 첫번째 선수”라고 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을 쓰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그가 경기에 집중하면 세계의 어떤 팀도 막을 수 없다”고 격찬했다. 하지만 웨일스의 전력은 그의 왼발에 미치지 못했다.

자국 팀의 저조한 전력으로 월드컵 무대에 오르지 못한 선수가 어디 이들 뿐인가. 동유럽 ‘전투축구’의 표본인 체코의 미드필더 네드베드, 95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에 빛나는 핀란드의 리트마넨, 서인도제도의 검은 별 드와이트 요크, 아일랜드가 네덜란드에 이어 또다시 쓴 잔을 건넨 이란의 알리 다에이. 이상의 명단으로도 또 하나의 월드컵을 치를 만하다.

우리는 라이베리아의 ‘킹 조지’를 따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아와 내전의 땅, 인간적 생활은 커녕 생명체로서의 생존조차 염려해야 하는 생지옥. 이 서아프리카의 내전국에서도 사람들은 공을 차고 그 순간만큼은 생명을 옥죄는 사슬을 잠깐 잊고 본능적 쾌감에 젖는다. 그 지옥불에서 솟아난 영웅 조지 웨아. 1995년 국제축구연맹(FIFA) 선정 ‘올해의 선수’ 등 축구 선수가 차지할 만한 모든 명성을 얻은 별이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멀었다.

이번 지역예선에서도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혔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싸운 것은 축구장의 상대 수비수들이 아니었다. 그는 우선 자신의 가난과 싸웠고 축구스타로서 부패에 찌든 축구계와 싸웠으며 궁극적으로는 내전과 독재로 모국을 생지옥으로 만든 찰스 테일러 독재 정권과 싸웠다. 그는 유럽의 백인들 틈으로 귀화하지도 않았고 육체의 혹독한 시련으로 얻은 부를 함부로 남용하지도 않았다. 이번 지역예선에서도 그는 대표팀 운영비를 대고 감독까지 겸하며 분전했다. 그의 국민적 인기를 질투한 부패 정권과의 마찰은 은퇴라는 초강수까지 낳았다.

축구계의 스타 중에는 비민주적인 정권의 흥행몰이에 동원되거나 짐짓 조국의 현실은 외면한 채 일신의 영달을 꾀한 예가 많다. 또 그렇게 현실을 외면한 채 ‘선의의 경쟁과 친선 도모’에 열중하는 것이 스포츠맨십의 전부인 것처럼 통하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일부러 조지 웨아처럼 살 수는 없다. 축구선수는 작열하는 승부의 쾌감만으로도 우리에게 얼마든지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반전이 끝난 잠깐의 휴식 시간을 쪼개서라도 조지 웨아의 삶에 대해 경건할 필요가 있다.

축구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