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는 90년 이후 12년째 지수 270∼1100의 박스권 안에서 움직였다. 종합주가지수 그래프를 보면 장기 상승 추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기 하락 추세도 아니다.
그런데 금융업, 그리고 금융업의 중심인 은행업종의 장기 주가 추이를 살펴보면 완전히 다른 모양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두 업종지수 그래프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대세 하락’의 모양을 나타냈다. 그러다 2000년에 바닥을 치더니 지난해와 올해 긴 대세 하락을 마무리짓고 상승세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한국 경제의 오랜 부담이었던 금융업 부실이 마무리됐으며 한국 증시도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업, 한국 증시의 바로미터〓금융권의 부실은 오랫동안 한국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이 두 그래프는 일개 업종지수 그래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강성모 동원증권 투자분석팀장은 “한국 증시가 역사적으로 지수 1100선 아래에 있었던 이유는 대기업의 부실, 그리고 이 부실에 맞물려 큰 손실을 입은 금융업의 붕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부실 하나도 증시가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판에 부실기업이 나올 때마다 금융업종지수가 크게 떨어지며 시가총액을 뭉텅뭉텅 까먹으니 증시가 살아날 수 없었다는 설명.
▽업종지수 상승 반전의 의미〓두 지수 그래프는 모두 98년과 2000년 같은 주가 수준에서 바닥을 두 번 형성한 뒤 지난해부터 오름세로 돌아서는 모습이 발견된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와 대우사태 등 두 번의 큰 악재를 뚫고 상승세로 돌아선 것.
부실기업 문제를 처리하면서 부실 금융기관이 떨어져나가고 남은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이 좋아진 덕분으로 풀이된다.
해석의 초점은 이 상승세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그리고 이를 금융기관과 한국 증시 전체의 건전화로 이해해도 될지에 모아진다. 많은 전문가들이 금융업종지수는 상승세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병건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의 은행들은 자산건전성 면에서 국제적인 기준을 갖다 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며 금융권의 변화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를 한국 증시 전체의 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신중한 반응이 적지 않다. 박효진 신한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금융권이 제조업의 부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라며 “‘금융업 건전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 증시의 큰 변화’를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