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워싱턴에 있는 193개 은행 지점 거의 대부분이 사전 예고 없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이날 정오 워싱턴의 한 은행에서 폭발물 테러가 발생할 수 있으니 경계를 강화하라는 연방수사국(FBI)의 통보에 따른 조치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지난해 소득에 대한 세금을 국세청(IRS)에 확정신고하는 마감일이자 많은 기업체의 봉급일이서 갑자기 은행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테러 경계령은 14일 저녁 네덜란드에서 국제전화로 워싱턴 시경에 걸려 온 제보 때문이었다. FBI는 제보자가 폭발물의 종류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점으로 미루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각 은행에 평소보다 경계에 신경써 줄 것을 요청했고 은행들은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아예 셔터를 내렸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추적 결과 이 제보는 네덜란드에 사는 13세 소년이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장난을 친 것으로 판명됐다.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어처구니없는 소동에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워싱턴은 이런저런 시위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날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수만명의 시위대들이 의사당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고 이에 맞서 팔레스타인 지지자들도 시위를 벌여 교통체증이 극심했다.
이처럼 뒤숭숭한 분위기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춘계 합동 총회와 800명의 연방 법관들이 참석하는 연방법관회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방문 등으로 대규모 시위가 우려되는 이번 주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경찰은 시위대가 테러의 표적이 돼 폭발물이 터지고 통신망이 마비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직원 휴가를 전면 취소시킨 채 대비책 마련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워싱턴의 명물인 포토맥 강변의 벚꽃은 지금 환한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은 추가 테러에 대한 불안과 시위 몸살로 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있다.
한기흥 워싱턴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