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의 ‘동무생각’은 이제 전국민의 애창곡이 되어버린 친근한 가곡이다. 노래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이라는 가사의 느릿한 선율로 시작된다. 가사가 말하는 바 ‘봄의 교향악’이란 봄을 맞아 생동하는 만물의 장엄한 하모니를 표현한 은유일 것이다.
은유적 표현이 아닌 실제의 ‘봄의 교향악’도 있다. 슈만의 교향곡1번 B플랫장조의 제목이 바로 ‘봄’이다. 슈만이 스승 비크의 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그의 딸 클라라와 결혼에 성공한 즈음의 작품이니만큼 실로 인생의 ‘봄’을 맞은 행복감이 작품속에 투영되었을 것이다. 봄의 탄생을 나타내는 1악장 서두의 팡파르와 현이 약동하는 리드미컬한 주제, 4악장의 솟아오르는 듯한 환희의 분출은 ‘봄의 교향곡’이라는 과감한 표제를 담아내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만약 ‘동무생각’ 서두에 노래되는 ‘봄의 교향악’을 상상하고 실제의 ‘봄의 교향악’을 듣는다면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동무생각’의 다짐과도 같은 사뭇 경건한, 장엄한 축복과도 같은 봄의 이미지는 이 교향곡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가 ‘봄의 교향곡’으로서 오히려 선호하는 작품은 이 작곡가(슈만)의 교향곡 4번 D단조이다. 작품 순서로는 그가 가장 마지막에 작곡한 교향곡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창작시기는 1번과 크게 떨어져있지 않다. 그러나 이 교향곡이 듣는 이에게 전달하는 이미지는 1번의 것과 사뭇 다르다.
일반적으로 ‘가장 독일적인 작곡가’로 꼽히는 인물은 브람스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브람스가 그려낸 독일은 북부의 음울한 구름을 지고 있는 것 같아 그의 작품만으로 ‘음악속의 독일’을 대부분 상상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 듯 하다. 풍부한 지방적 이미지의 표현에 있어서는 오히려 슈만의 음악이 가장 독일적 개성을 지니고 있다. 슈만의 음악은 어둑한 브람스의 개성과 달리 남부 독일의 평원과 숲에 비치는 오후의 햇살과도 같은, 그리고 옹기종기 작은 마을들이 간직한 예사롭지 않은 내력들을 전해주는 듯한 따스함과 중후함을 함께 갖고 있다.
기자가 늦은 봄 독일 남부 로마시대의 통상로인 ‘로마 가도(로만티쉐 시트라세)’의 작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내내 마음속으로 떠올렸던 선율이 바로 교향곡 4번의 3, 4악장이었다. 특히 3악장의 힘있는 스케르초에 이어 4악장의 빠른 주제가 시작되기 전, 호른 등 금관악기로 연주되는 느릿한 부분은 저 먼 능선이 햇살을 받아 아스라히 반짝이는 듯, 대지가 따사로운 계절의 생명력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듯, 마음에 무겁게 부딪쳐오는 장엄함으로 압도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