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동차경주대회 유치 과정의 편의제공 등을 대가로 세풍그룹에서 4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유종근(柳鍾根) 전북도지사가 세풍그룹 측에 먼저 12억원을 요구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서울지법 형사합의 23부(김용헌·金庸憲 부장판사) 심리로 16일 열린 유 지사에 대한 첫 공판에서 뇌물교부 혐의로 함께 재판을 받은 고대용(高大容) 전 세풍월드 부사장은 검찰 신문을 통해 “유 지사가 정치자금으로 쓰겠다며 12억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97년 11월 세풍그룹 임원들과 함께 유 지사를 찾아가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유치사업의 인허가 유지를 도와달라고 하자 유 지사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뒤 돈을 요구했다”며 “액수가 너무 커서 당황했지만 일단 할아버지(고 고판남·高判南 세풍그룹 회장)에게 이를 알렸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한 달 뒤 유 지사의 관사를 찾아가 회사 측에서 마련한 3억원을 건넸고 98년 6월에는 유 지사의 처남인 김동민씨를 통해 현금 1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유 지사는 “국제자동차경주대회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유치를 추진했을 뿐 세풍 측에 먼저 돈을 요구하거나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검찰은 이날 고씨가 유 지사와의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녹취록에는 유 지사가 “나는 흔적이 없는 사람이니 돈은 당신(고대용)이 썼다고 하면 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2차 공판은 다음달 3일 열릴 예정이다.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