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연한 낭만발레의 고전인 '지젤'
《“많이 늘었네. 외국 명문 발레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9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국립발레단의 낭만발레 ‘지젤’을 관람한 무용애호가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젤’은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작품임에도 총5회 공연 평균 1461명(객석 유료점유율 73%)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처럼 국립 발레단이 급성장한 것은 ‘꾸준한 투자’와 ‘발레 대중화 작업’에 있다. 국립발레단의 급성장 비결을 알아본다.》
초대 임성남 단장에 이어 1993년 2대 단장을 맡았던 김혜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은 한국 발레 부흥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 캐나다 레그랑발레단 수석무용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극무용과 교수 등을 지냈던 그는 30여년간 외국 생활의 노하우를 국립 발레단에 적용했다. 자신의 후계자가 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을 비롯, 이재신 한성희 강준하 등을 길러냈다.
김원장은 “기본기 교육에 충실하면서 무용수들의 신체조건이 서구화된 것이 한국 발레의 성공요인”이라며 “아는 후배를 끌어주던 구태의연한 악습을 떨어내고 실력 있는 무용수라면 신인도 주역 무용수로 캐스팅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93년 국내 최초로 발레단 부설 교육기관인 ‘문화학교 발레단’(현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을 설립해 예비 무용수 양성에 나섰다. ‘문화학교…’ 출신의 임정윤양(서울예고)이 지난해 아시아 태평양 국제 무용 콩쿠르 주니어부 금상을 차지하는 등 발레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태지 3대 단장이 부임한 96년부터 국립발레단은 발레 대중화를 이루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1997년부터 ‘해설이 있는 발레’를 마련해 무용수와 관객의 거리를 좁힌 것이다. ‘해설이 있는 발레’는 최 단장이 재임했던 6년동안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혜식 2대 단장-최태지 3대 단장-김긍수 4대 단장
최 단장은 또 ‘스타 마케팅’을 정착시켰다. 김지영 김주원 김용걸 이원국 등 단원들을 해외 콩쿠르에 파견해 입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
그는 “김지영 김용걸이 98년 프랑스 파리 무용 콩쿠르 듀엣 1등상을 받으며 스타가 됐고 이는 발레 관객 증가로 이어졌다”며 “최근 매년 90회 공연을 가지면서 무용수들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한국 발레 수준이 높아진 요인”이라고 자평했다.
이밖에 1993년부터 연간 7000만∼8000만원을 후원하는 정재계 인사 20여명으로 구성된 ‘국립발레단 후원회’와 지난해 결성돼 티켓 판매 자원 봉사 등을 벌이고 있는 ‘발레 동호회’ 등이 오늘의 국립 발레단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
올해 새롭게 국립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김긍수 4대 단장은 “그동안 전임단장들이 일궈놓은 성과를 바탕으로 2004년 유럽공연부터 한국 창작 발레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투자자를 적극 유치해 안정적인 활동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무용 관계자들도 국립발레단이 짧은 시간에 빠른 성장을 이룬 것을 높이 평가한다. 99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후 예산을 늘려 외국 안무가 초빙, 무대장치 의상 등에 과감한 투자로 수준이 한층 향상됐다는 것. 이에 힘입어 6월 ‘돈키호테’ 공연에는 프랑스의 의상 무대 디자이너 제롬 캐플랑과 58년간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조명을 맡았던 베르나르 이브을 초빙해 유럽식 무대를 꾸민다. 또 10월에는 유럽 최고의 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 12월에는 ‘호두까기 인형’의 막을 올릴 예정이다.
무용 평론가 장광열씨는 “외국 안무가의 지도로 연기와 춤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하지만 주역 무용수가 부족하고 군무진의 연기력을 보완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