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빨리 확인을…”
“내 아내 이름이 없네, 유미선인데….”
16일 경남 김해시 지내동 돗대산 사고 현장에 마련된 현장 상황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30대 남성이 넋이 나간 듯 생존자 명단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결혼식 앞둔 신부 주검으로▼
그는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15일 한국행 중국 국제항공공사 소속 여객기에 탔다가 희생된 옌볜(延邊) 출신 중국동포 유미선(兪美善·30)씨의 남편. 유씨는 시신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좌석번호 ‘C13’이 적힌 종이만 매단 채 싸늘하게 김해중앙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김해 하늘에서 사라진 중국동포들…. ‘기회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이들의 꿈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오영근(吳永根·39·중국 지린성)씨와 박성철씨(31)는 사흘 전만 해도 만선(滿船)의 꿈에 부풀어 행복했었다. 이들은 12일 중국에서 만난 박용복, 서성국(徐成國)씨 등과 함께 한국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일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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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 취업꿈 깨져▼
“지린(吉林)성에 사는 노모의 지병을 고치고 행상 하는 아내와 허리를 펴고 살 수 있을 거야…” “여섯 살배기 막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 거야….” 오씨는 술자리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푼 꿈을 털어놨었다.
한번 타면 13개월을 타국의 바다에서 일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그 대가로 4000달러(약 500만원)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좀더 큰돈을 마련하려고 2년 장기 계약을 했다. 대가는 약 9000달러.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들 장밋빛 미래를 얘기하며 베이징(北京)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15일 오전 8시50분 마침내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으나 3시간 뒤에는 모든 것이 끝이었다.
심한 몇 번의 요동과 ‘꽝’하는 충격 뒤에 남은 것은 오영근씨와 박성철씨의 상처투성이 몸이었다. 박용복씨와 서성국씨의 시신은 아직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돈 만나러오다 참변▼
중국동포 채광호(48·옌볜), 박성화씨(47) 부부도 둘째딸 채춘영씨(22)의 5월 5일 결혼식을 앞두고 사위 문주승씨(35·부산 동구 범일동)의 부모와 상견례를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으나 결국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을 볼 수 없었다.14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지만 좌석이 없어 하루 미뤘던 것이 화근이었다. 몽골에 사는 큰딸에 이어 또 먼 곳으로 둘째딸을 보내지만 나이 많은 사위가 잘 해주리라 굳게 믿었다. 관광비자를 발급 받아 결혼식도 보고 한국 구경도 할 참이었다. 사위 문씨는 “천애의 고아가 돼버린 아내가 정말 안쓰럽다”며 눈물을 훔쳤다.
사고기에 탑승했던 승객 155명 중 중국동포는 20여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생존이 확인된 중국동포는 8명뿐이다.
김해〓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