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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기자의 논스톱슛]“뛰어난 지도자라도 따끔한 충고 필요”

입력 | 2002-04-17 17:53:00


최근 한 방송사의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을 보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한국축구대표팀과 거스 히딩크 감독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온 뒤에야 한국축구가 전술이라는 것을 겨우 알게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네덜란드 프로명문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리그 3회 우승을 이끌었고 스페인의 명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역임했으며 네덜란드대표팀 사령탑으로 98프랑스월드컵에서 4위의 성적을 거둔 히딩크 감독의 능력에 대해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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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더라도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축구가 제대로 된 전술 하나없이 이제까지 내려오다가 히딩크라는 외국지도자 한명 덕택에 1년여 만에 일취월장했다는 식의 주장은 분명 과장된 것이었다.축구대표팀에서 감독의 비중이 아주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축구가 히딩크 감독에게 지나치게 의지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1970년 멕시코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은 전 국가가 오로지 월드컵 세 번째 우승을 위해 매진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브라질에는 살다냐라는 명 지도자가 있었다. 살다냐 감독은 젊은 시절부터 축구 이론을 공부하는데 심취했고 이탈리아의 명감독 포치오에게 한 수 배우기 위해 38년에는 자가용 증기선을 몰고 대서양을 건너갈 만큼 대단한 열성을 지닌 지도자였다. 66년 브라질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69년 6월 영국을 격파하는 등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런 그가 월드컵 개막을 한해 앞둔 69년 여름 유럽 여행을 갔다오더니 갑자기 “수비축구를 해야 한다”며 7명이나 되는 선수를 대거 바꿨다. 급기야 “수비축구를 위해서는 펠레를 탈락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내놓았다. 이러자 축구팬이 들고일어났고 살다냐는 즉각 교체됐다. 후임 자갈로 감독은 브라질축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공격중심으로 팀을 재편했고 무난히 월드컵 첫 3회 우승을 이룩했다.

이 일화야말로 대표팀 감독과 선수, 축구협회, 축구 팬간의 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옆에서 찬사 일변도가 아닌 따끔한 지적을 해 줄 수 있는 통로가 항상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