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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입력 | 2002-04-17 18:26:00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1)

강가를 달리고 있는데 물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물도 바람도 없음을 가장하고 있다 들리는 것은 오직 숨소리뿐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숨이 심장을 채찍질하고 빨간 말이 내 안을 뛰어다니며 땀이 방울 방울 외침이 되어 떨어진다 외친다 아니 외치지 않는다 나는 노래한다 뼈도 조선 피도 조선 이 피 이 뼈는 살아 조선 죽어 조선 조선 것이라(1) 노래가 다리에 박차를 가한다 멀리 멀리 왼쪽 종지뼈에도 오른발 검지 발가락에 생긴 물집도 아프지 않다 바람도 잔잔해졌고 아프지 않다 지금이다! 지금밖에 없다 지금 따돌려라 우리네 부모가 날 찾으시거든 광복군 갔다고 말 전해주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 보세(2) 따돌린다고? 누구를? 난 밀양강의 강둑을 달리고 있었는데 여기는 내 고향이 아닌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 거지? 대회에 출전한 것인가? 내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인가? 누구의 숨소리도 좇아오지 않는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내 숨소리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늘 같이 달려주는 내 그림자가 없다 오른손 왼손 가슴에 붙인 일장기도 보이지 않는다 달도 별도 불빛도 없는 완전한 어둠이다 돌아보면 뭐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보면 안 된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누가 쫓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리자 어디로부턴가 멀어지고 어딘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니

달릴 수밖에 없다 하나 둘 하나 둘 볼기에 힘을 주고 허벅지를 올리고 허리부터 앞으로 하나 둘 하나 둘 고개를 들고 두 팔을 힘차게 리드미컬하게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눈을 감은 채 똑바로 날아가는 새처럼 광풍이 불어요 광풍이 불어요 삼천만 가슴에 광풍이 불어요 바다에 두둥실 떠오는 배는 광복군 싣고서 오시는 배요 아리랑 고개서 북소리 둥둥 나더니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 펄펄 날리네 노래가 몸 속을 휘몰아친다

오래된 노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다고 노래가 낡는 일은 절대 없다 이름이 오래 써서 낡는 일이 없는 것처럼 노래와 이름은 소리내어 부르지 않으면 사멸하고 만다 이름 내 이름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숨이 끊어질 것 같다 깊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뱉고 다시 한 번 깊이 들이쉬고 내뱉고 자 이제 숨이 안정되었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목소리를 발사한다 이우철!

역자 주

(1)‘독립가’의 원문은 독립기념관에서 제공받았음.

(2)‘광복군 아리랑’은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 5’(지식산업사,1988)에서 인용하였음.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