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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규민/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입력 | 2002-04-17 18:31:00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현존하는 언론인 가운데 미국 및 중동국가 정부들의 정책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물로 손꼽힌다. 경쟁지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 포스트조차 ‘NYT의 토머스 프리드먼까지 명백하게 반대하는데 (정부는) 왜 머뭇거리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중동정책을 비판할 정도다. 최근 5년간 미국 내 22개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거나 혹은 가장 자주 글이 인용되는 지식인 30명의 명단에도 그는 앞쪽 줄에 끼어있다. 평생 한번 받기도 어려운 퓰리처상을 그가 세 번씩이나 받은 기록도 우연은 아니다.

▷프리드먼씨가 2년 전 개정판을 낸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세계화를 가장 적절하게 분석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책 제목에 등장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세계화와 과거의 전통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상징한다. 즉 일본 도요타가 만드는 최고급차 렉서스는 최첨단 설비와 기술로 생산돼 전 세계 시장에서 선망 속에 팔리는 세계화의 심벌이다. 반면 베이루트와 예루살렘에서 중동국가들이 서로 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벌이는 갈등의 핵심인 올리브나무는 전통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세계화 시대에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 책을 읽으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넘나드는 국제금융자본, 그리고 국적을 초월한 기업활동이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주의화(세계화)가 얼마나 무섭고 무자비할 수 있는지에 전율하게 된다. 역사의 기차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세계화라는 굽잇길을 돌 때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이 시스템을 거부할 경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차에서 순식간에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를 이 책은 생생한 사례들로 경고한다. 저자는 한국도 구시대적 정치와 구시대적 경제시스템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하루빨리 올리브나무 가지를 던져버리라고 충언한다.

▷김대중 대통령 아들 홍걸씨에게 거액을 주었다고 밝혀 뉴스의 중심에 서있는 최규선씨가 16일 검찰에 출두할 때 이 책을 들고 가서 화제다. 그가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의 독서광인지, 아니면 단순한 겉멋에서 그랬는지, 혹은 무언가 간접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 책이 정치인과 대통령친인척 그리고 기업인들 간의 부정부패 고리를 세계화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적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규민 논설위원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