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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샴페인에 잰 돼지목살&샐러드

입력 | 2002-04-18 14:47:00

돼지목살과 상파뉴. '삼겹살에 소주'와는 결이 조금 다른, '유럽의 맛'이 담겨 있다.


상파뉴(Champagne). 흔히들 샴페인이라 알고있는 발포성 와인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상파뉴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동쪽에 떨어져 있는 지방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술 상파뉴 혹은 샴페인이 태어나는 곳이다. 샴페인은 ‘안동소주’처럼 지방명을 살린 이름이므로 발포성의 와인이라도 상파뉴산이 아니라면 단순히 발포성 와인(sparkling wine)이라 불러야 옳다.

노란 금가루를 뿌린 듯 화사한 빛깔에 별처럼 쏟아지는 자잘한 기포들은 여왕의 목덜미를 장식하는 다이아몬드 네클리스의 장식마냥 화려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인지 상파뉴는 서양 영화나 소설에서 우아하고 화려한 여인 곁에 자주 등장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궁 밖으로 놀러나온 앤 공주(오드리 햅번 분)가 아무리 서민인 척 노천카페에 앉아 있어도 마실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듯 자연스레 “상파뉴”를 주문하는 모습은 그녀가 귀하게 자란 아가씨임을 드러내는 기호다.

역사 속 인물 중에도 상파뉴 애호가들은 많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자 당대의 문화적 리더였던 퐁파두르 부인(Madame Pompadour)은 “여자가 아무리 마셔도 추하지 않은 술은 샹파뉴 뿐”이라고 예찬 했다. 화려한 외관과 높은 가격대 때문에 여태까지 상파뉴를 접하지 못하신 분들, 향은 좋아하지만 알코올에 약하신 분들, 그리고 꽤 수준높은 미식이 궁금하신 분들은 모두 모이시라. 내 손에 들린 상파뉴의 코르크 마개를 돌려 뽑고 오늘의 파티를 시작한다.

●전채- 상파뉴 간장 드레싱의 샐러드

일단 사과 1개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상파뉴 1컵에 담가둔다. 준비된 생야채를 깨끗이 씻어 냉장고에 보관한 후 상파뉴, 설탕, 간장에 기타 양념으로 간하여 드레싱을 만든다. 친숙한 간장의 단맛에 오르는 상파뉴의 새콤한 향기가 생야채, 절여진 사과와 씹힐 때 혀뿌리에 침이 고이며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식빵을 작게 썰어 버터나 올리브유에 튀겨낸 크루통을 함께 올리면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한결 고소하다.

●메인요리- 상파뉴 돼지목살

와인에 재웠다가 굽는 삼겹살이 유행인데, 여기서 착안, 적당한 신 맛과 잔향이 풍부한 상파뉴에 통후추를 몇알 띄워 도톰히 썬 돼지 목살과 양파를 담가 두자. 고기에 향이 배는 동안(적어도 1시간) 볶음밥을 만드는데, 버터(부드러운 버터와 예민한 샴페인은 궁합이 잘 맞는다)를 달구어 밥과 피망을 바싹 볶다가 여기에 상파뉴를 부어 향미를 돋운다. 피망의 단맛과 상파뉴가 어우러져 꼬들꼬들하게 볶아진 밥에 스민다. 완성된 밥을 접시에 담고 돼지목살과 양파를 구워 밥 곁에 두른 후 가느다란 파채로 장식한다.

●후식- 상파뉴 셔벗

샐러드의 씹히는 사과로 시작하여 향이 좋은 돼지고기 몇점에 달착지근 볶아진 밥까지 만족한 식사였다. 이제는 멋진 마무리로 입을 가셔줄 차례. 반찬 냄새가 배지 않은 플라스틱 용기에 상파뉴와 약간의 시럽, 그리고 다져 놓은 딸기를 담아서 얼린다. 단 꽁꽁 얼기 직전 냉동실에서 꺼내어 포크로 표면을 깨뜨린 후 다시 얼리고 하는 과정을 두어번쯤 반복해야 완성후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좋다. 상에 낼 때는 오목한 컵에 담고 쌉쌀한 생강편을 조금씩 곁들이면 향이 더하다.

조리대 한편에 따라 둔 상파뉴를 홀짝거리며 신나게 요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3가지 코스의 정찬이 준비 되었다. 먹는 맛, 보는 맛이 새로운 퓨전 요리의 강점은 간단한 수공에 비해서 그럴듯한 폼이 난다는 것인데, 거창하게 느껴지는 코스요리도 이렇게 후닥닥 준비가 될 수 있다.

요리하는 동안에 이미 상파뉴 향에 흠씬 취해버린 분들을 위해 오늘의 주종으로 색다른 제안을 한다면 바로 ‘레몬소주’다. 전채부터 후식까지 사용된 상파뉴의 새콤달콤한 맛이 레몬 소주의 시큼한 단맛과 크게 비껴나지 않으며, 특히 메인 요리인 돼지 목살에 이르러서는 ‘돼지고기에는 역시 소주’라는 진리에도 부합되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는 생수에 시럽을 조금 타서 레몬을 띄워주자. 멋진 식사로 온 가족의 기억에 남을 식탁이다. 상파뉴의 가격이 그래도 부담스럽다면 다른 발포성 와인을 사용해도 맛을 내는데 큰 무리는 없다.

오늘의 메뉴를 준비하며 기다란 크리스털잔의 상파뉴와 짤막한 소주잔의 누리끼리한 레몬소주를 오가다 보니 마시고 취하기야 매한가지라. 그저 무엇에든 크게 웃고 나눌 수 있다면 그만으로도 삶은 고마운 것이다.

박재은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

◆ 재료와 만드는 방법

샐러드

샐러드 야채200g, 사과1개, 상파뉴 1컵 반,

간장 1큰술, 설탕 1큰술, 식초 1큰술, 올리브유 5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소금, 후추, 식빵

1. 사과는 썰어서 상파뉴 1컵에 재워둔다.

2. 야채는 씻어서 차게 두고 나머지 상파뉴와 양념을

모두 섞고 거품기로 세게 저어 드레싱을 만든다.

3. 식빵은 썰어서 여분의 버터나 올리브유에 튀겨내고

접시에 1, 2와 담는다.

돼지고기

돼지목살 300g, 상파뉴 1컵 반, 통후추 약간,

양파 1개, 밥 2공기, 피망 1개, 다진 마늘 1작은술,

상파뉴 2큰술, 버터 35g, 소금, 후추, 파

1. 돼지고기와 양파를 1컵 반의 상파뉴에 통후추를

띄워서 재운다.

2. 버터를 달구어 마늘과 피망을 볶다가 밥을 넣고

바싹 볶은 후 상파뉴를 두어스푼 흘려 향을 돋운다.

3. 돼지와 양파를 건져서 구운 후 2의 밥과 곁들이고

파채로 장식한다.

셔벗

상파뉴 2컵, 딸기 100g, 시럽 2큰술, 생강편

1. 딸기는 다지고 상파뉴, 시럽과 섞어서 얼린다.

2. 1이 서걱서걱 얼기 시작하면 포크로 깨뜨려 뒤집어

준 후 다시 얼리는 과정을 두어차례 반복한다.

3. 2를 컵에 담고 편강과 함께 낸다.

◆ 발포와인 제맛 즐기려면

일반적인 와인과 발포와인의 제조상 차이점은 효모와 당이 첨가 되어 기포가 생겨 난다는 것. 그 특유의 청량감과 향미는 입맛을 돋우고 긴장을 풀어주어 식사를 즐겁게 만든다.

발포성 와인 중 특상품은 프랑스 상파뉴 지방산이지만, 독일이나 스페인산 역시 독특한 맛과 적당한 가격(1만원 내외부터)을 자랑하니 주머니 사정에 따라 즐겨보자.

약간 찬 듯 마셔야 그 향이 더욱 살아나므로 서빙온도를 7∼8도로 유지하는데 신경쓰자. 약간의 과일주스나 여타 시럽과 섞으면 한 병으로도 열명이상이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이 된다. 단 칵테일을 만들려면 굳이 비싼 상파뉴 대신 저렴한 발포와인을 이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