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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김-이승재기자의 테마데이트]속옷

입력 | 2002-04-18 14:51:00

앙드레 김의 이너웨어 라이선스 브랜드 '엔카르타(encarta)' 출시를 기념하는 패션쇼


앙〓저는 ‘T자형’ 팬티는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케이블 TV나 잡지를 통해 이너웨어쇼를 접하다 보면 포르노쇼를 방불케 하는 경우도 있었죠. 참 혐오스럽죠? 모델부터가 섹시하고 야성적으로 보이려고 머리를 마구 풀어헤치고요. 패션쇼를 앞두고 저는 ‘이너웨어일수록 머리도 단정하게, 메이크업도 깔끔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이〓시인 김춘수는 말했죠.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무의미한 존재가 ‘그의 이름’이 불리어지자 비로소 ‘꽃’이란 유의미한 존재로 탄생하게 되었다고요. 속옷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에게 ‘보인’ 후에야 비로소 ‘속옷’의 의미가 탄생하는….

앙〓그럴까요?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도 부뚜막은 반질반질했잖아요?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까요?

이〓그래도 이성을 유혹하는 데 효과적이잖….

앙〓‘당신이 아니면 난 자살할 거야’하고 결심할 때의 여성은 그 순간 팬티만 걸친 남성의 모습을 상상할까요? 여성은 오히려 수트를 입고 넥타이를 맨 깔끔한 남성의 모습에서 섹서피얼(sex appeal·섹스어필)을 느끼죠. 중매로 선을 볼 때도, 우연히 만나서 연애할 때도 모두 의상을 입은 상태에서 하잖아요? 그러다가 결혼하면, 남성의 경우 평소 지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던 상대 여성이 보여주는 이너웨어에서 아아, 섹시함을 느끼게 되니 ‘금상첨화’겠죠? 사랑의 열정이 더욱 용솟음치는 거죠.

이〓속옷은 미학적 외양도 중요하지만 체형보정 기능이 더 중요하죠.

앙〓그렇죠. 우선 가슴과 힙이 처지지 않고 올라붙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상식이죠? 서양에선 오래 전부터 코르셋이라는 게 있잖아요? 허리선은 더 잘록하게 보이도록 하고….

이〓또 액센트가 필요한 곳은 좀 더 과장되게 부풀리고요?

앙〓아아, 좀더 볼륨 있게, 입체감 있게, 글래머러스하게 살린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죠?

이〓쇼데를로스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에는 이런 독백이 등장하죠. ‘그녀를 가리는 모든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킵니다.’ 속옷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압박하는 역효과도 있지 않을까요?

앙〓노(no) 메이크업의 여성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지구가 우울하겠어요. 10, 20대는 헤어를 펑크적이거나 전위적으로 하는 신선한 변화도 추구하잖아요? 속옷도 마찬가지죠. 꼭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실험정신과 자신감을 추구하는….

이〓가터 벨트(garter belt)의 착용 유무에서 서양과 동양 여성의 속옷 풍습이 구분되는 것 같아요. 서양 여성은 다리가 기니까 밴드 스타킹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가터 벨트가 필요하겠지만, 우린 거의…. 60, 70년대 개발시대의 한국 여성들은 밴드 스타킹이 시작되는 부위에 동전을 돌돌 말아넣어 스타킹의 흘러내림을 방지하는 민간요법도 썼는데요….

앙〓잠깐만요. 미스 장, 미스 유. 여러분들 모두 여기로 와 주세요. 플리즈.

(15초가 지나자 의상실 여직원 7명이 앙드레 김의 주위에 일렬로 섰다.)

앙〓팬티 스타킹을 많이 입나요? 아니면 밴드 스타킹을 많이 신나요?

직원A〓팬티 스타킹이요.

앙〓그건 절대로 안 흘러내리죠. 그렇죠?

직원B〓예, 선생님. 바지를 입을 때는 여기(무릎)까지 오는 걸 신고요.

앙〓네, 네. 무릎 밑까지 올라오는 것이죠? 근데 왜 팬티 스타킹을 많이 착용하나요?

직원C〓일단 편하죠.

앙〓편하고 또 반듯할 거에요. 밴드형은 오래 걷다 보면 흘러내리진 않더라도 약간 겹칠 테니까 시각적으로 주름져 보이겠죠? 반면 팬티 스타킹은 팽팽함이 유지되죠. 그렇죠? (직원들에게) 아아, 감사해요. 감사해요.

이〓선생님 패션쇼에 등장한 남성용 팬티를 보니 대부분 사각 트렁크였습니다. 삼각과 사각을 각각 어떻게 평가하세요?

앙〓오랫동안 보디 피트한 삼각이 상식이긴 했지만요. 남성들이 ‘나는 섹시해 보이겠지?’하고 스스로 과시하는 듯한 느낌을 줄 때보다는, ‘나는 그런 데 신경쓰고 싶지 않아’ 하고 자신의 몸에 무관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줄 때 여성은 진심으로 유혹을 느끼죠. 트렁크는 타이트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해방감, 아아, 이지(easy)한 매력의 세계로 여성에게 다가가는….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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