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주일의 단어]春來不似春

입력 | 2002-04-18 15:16:00


황사가 유난히 자주 발생하는 봄이다. 황사가 지나갔나 싶으면 비를 동반한 돌풍이 몰아치거나 초여름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주말 나들이 한 번 제대로 해 볼 기회도 주지 않고 봄 같지 않은 봄이 지나가고 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땅에는 꽃도 없고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명령으로 흉노족에 팔려간 한 아름다운 궁녀의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외침에 시달리던 원제는 궁중 화가에게 궁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후 그 중 가장 못생긴 궁녀를 뽑아 흉노족 왕에게 보내 회유하기로 했다. 궁녀들은 모두 화가에게 달려가 온갖 아양을 떨며 예쁘게 그려줄 것을 부탁했지만 왕소군이라는 궁녀는 그러지 않았다. 초상화만 보고 그녀를 보낼 것을 명한 황제는 막상 흉노족 왕에게로 떠나는 왕소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한다.

한나라와 당나라의 수도는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 지역이다. 이백은 시를 읊으면서 장안의 봄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장안에는 음력 정월이 되면 봄기운이 감돌고 우수를 지나면 온갖 꽃이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장안의 봄과 비교할 때 꽃도 없고 풀도 없는 북쪽 오랑캐 땅이 봄 같을 리 없었을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인간의 심성이 살아가는 풍토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주장했다. 우리 민족의 고운 심성을 키워온 한반도의 봄이 예전 같지 않게 짖궂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