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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이광형/˝내자식 이공계 안 보낼래˝

입력 | 2002-04-18 18:25:00


21일은 제35회 ‘과학의 날’이다. 예년과 같이 기념식을 하고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번 과학의 날에는 어렸을 때 놀던 ‘구렁텅 놀이’가 생각난다. 땅바닥에 동그랗게 금을 그려 ‘구렁텅이’를 만들고, 그 안에 일정 수의 사람을 집어넣는다. 내가 그곳에 잡혀 있더라도 누군가를 끌어들이면 내가 나갈 수 있다.

역사상 금년처럼 침통한 ‘과학의 날’은 없을 것 같다. 뭐니뭐니 해도 과학기술은 국력 신장의 원동력으로 인식되었고, 이런 일을 맡은 과학기술인들은 자부심 속에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이런 자부심은 간 곳 없고 ‘처량한 신세’로 밀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작년 말 이공계 진학 희망자가 27%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공계 육성책’은 국가적인 화두가 되었다.

▼과학자들 멀고 먼 출세의 길▼

조금이라도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정부의 안일함과 사회 세태에 대해 열을 올린다. 정부에서는 학생들을 이공계로 유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안을 내놓고 있다. 교차 지원을 억제한다, 외국 유학을 보낸다, 대통령 장학생을 선발한다, 병역 특례를 확대한다는 등의 안이 나오고 있다. 늦게나마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을 올려 걱정하고 이공계 유인책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 많은 애국자들 중에서 “내 자식에게 이공계를 권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 자식은 이공계로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던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들이 새로운 유인책을 보고 맘을 바꾸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하도 언론에서 떠드니 “그곳은 아예 몹쓸 곳인가 보다”로 인식되어,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 왜 내 자식은 예외로 하고 싶은 것인가. 세속적인 기준에 의한 출세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생하는 것에 비해 돈 벌기도 어렵고 권력에 가까이 갈 수도 없다. 과학자의명예를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극소수가 되어버렸다.

기피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 있는데 주변의 지엽적인 것들만 나열해놓으니 아무도 감동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0여년간 이공계를 ‘구렁텅이’로 만들어 버렸고, 이것을 모든 국민이 알아버렸다. 그래도 20년 후에 한국인들이 뭔가 생산해가며 먹고 살려면 다음 두 가지 본질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처우를 대폭 개선해 주어야 한다. 사실 우리 정부가 연구개발비로 쓰는 돈은 대단한 것이다. 2002년을 예로 들면 정부예산의 4.7%에 해당하는 4조9000억원이나 연구개발비에 투입되고 있다. 국방비 등을 감안하면 선진국에 비교해도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연구원들은 못 해먹겠다고 한다. 돈의 사용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주는 연구개발비는 오로지 연구를 위한 재료비 장비비 등에 국한되고 있다. 연구원들의 사기를 올리는 인센티브에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마치 뷔페 음식점에 와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뷔페 음식점에 들어가 실컷 먹으라고 하면서 집에는 싸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먹는 것이 궁할 때는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그러나 옆집에서는 집에 싸 가는 것을 알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연구비를 많이 주는데도 고마워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연구비 5000만원을 더 주려고 하지 마라. 월급 50만원 인상이 더 효과적인 현실이다.

▼처우개선-공무원 임용 확대를▼

둘째, 공무원 임용제도를 바꿔야 한다. 현대국가를 운영하는데 과학기술을 모르고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과학기술이 거의 없던 일제시대에 시작한 고등고시 제도를 고집하고 있다. 이는 지구상에서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고 한다.

기술고시는 일년에 50명을 뽑는데 반해 인문계에서는 사법 행정 외무고시를 통해 1200여명 이상을 뽑고 있다. 그러니 정부의 고위관료 중 이공계 출신은 15% 남짓밖에 안 된다. 이공계의 진로를 이렇게 막아놓고 그 쪽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과학의 날’을 맞아 정책입안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내 자식도 이공계로 보낼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노(No)”라는 답이 나오면 귀하는 앞서 말한 ‘구렁텅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미래산업 석좌교수 바이오시스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