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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읽는 책]'파란 대문집 아이들'

입력 | 2002-04-19 17:31:00


□파란 대문집 아이들

미아 윤(Mia Yun)의 소설 ‘파란 대문집 아이들(원제 House of the Winds·이끌리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우선 한국인이 영어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종의 동료의식이랄까, 대학시절부터 영어로 소설을 쓰겠다는 욕심 때문에 오랜 고통을 겪었던 필자로서는 ‘파란 대문집 아이들’이 미국에서 출판되고 펭귄북 보급판까지 나오는 동안 작가가 이겨내야 했을 인내와 고뇌에 우선 안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한국 문학의 해외진출이라는 과제에 대한 한가지 해답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적’인 문학작품의 해외 소개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서 한국적 특성과 향토색이 담긴 소설을 ‘우리 문학’이라고 정의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문학의 해외진출이란 한국적 특성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 보편적 세계성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파란 대문집 아이들’은 물론 지극히 한국적인 소설이지만 화법과 감성이 보편성을 지닌다. 그러니까 자칫 관광안내서 같은 냄새를 풍기는 ‘한국 소설’이 아니라, 보편적인 화법으로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호소하는 힘을 지녔다는 얘기다.

또 한가지 인상적인 점은 ‘파란 대문집 아이들’이 ‘소설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거치며 부모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는데, 읽어가는 동안 독자는 ‘이것은 분명히 작가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적은 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너무나 실화(진실)스럽기 때문에 슬픈 감동이 마지막 문장(“인생은 하나의 강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흐른다- Life is a river. It flows incessantly”)으로까지 계속해서 흘러간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한 여인의 정신적인 성장을 개인적인 고백을 듣는 듯 따라가다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도 보인다. 한국의 모든 여인이 겪어온 삶, 자질구레하면서도 슬프거나 즐거운 일상, 그리고 전쟁과 격동의 역사가 끈끈하게 와 닿는다.

그리고 이런 큰 얘기를 작은 목소리로 전하는 ‘파란 대문집 아이들’은 화법도 독특하다. 앞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미제 전기 다리미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그 날 저녁에 5.16 쿠데타가 났다는 대목에서 시작된 감탄은 ‘물귀신(river ghost)’같은 미아 윤의 생동하는 언어, 그러니까 한국인의 감정을 영어로 전하는 창조적인 기법을 만날 때마다 거듭거듭 반복된다.

제 15장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장면은 떠나버린 아내의 옷을 뒤적이다 바늘에 찔리는 순간의 착잡한 마음을 그리는 파스테르나크의 시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파란 대문집 아이들’은 소설로 읽기보다는 시처럼 읽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의사 지바고’를 처음 영어로 읽었을 때 필자가 느꼈던 아까운 마음과 마찬가지였다.

칼에 손을 베어도 손가락이 잘라지지 않았으니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는 동양적 인고의 정신과 자세, 이러한 한국의 감정을 외국어로 표현하는 작가적 능력은 분명 하나의 두드러진 계산이다.

이 소설은 지난해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지만 가능하다면 영어로 된 글의 맛을 음미하도록 권하고 싶다. 한국문학의 해외소개에 대한 좋은 공부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안정효(번역가 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