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 중에 하나가 놀이, 그 중에서도 규칙을 정해놓고 게임을 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어떤 사회학자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놀이 중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것이 축구다. 배낭 매고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축구만큼 사랑 받는 놀이를 나는 본 일이 없다. 본고장인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인도에서, 아프리카에서, 터키에서 그리고 페루나 볼리비아의 산골에서도 축구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놀이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공 하나와 적당한 공터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프로축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광적인 면이 있어서 홈팀 선수가 입장을 할 때는 경기장 아나운서가 마치 프로 레슬링 선수를 소개하듯 한 명 한 명 호명을 하고 관중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홈팀 응원가를 열광적으로 합창하며 호응을 한다. 상대팀도 응원해 주라는 신사적인 관전 매너는 통하지 않는다. 분위기에 주눅들어 상대팀이 뛸 수 없을 정도로 열광적인 응원과 상대팀에 대한 야유 일색이다. 홈팀 경기가 벌어지는 날은 그 도시의 축제날이다.
터키 사람들의 광적인 축구 사랑도 그에 못지 않은데 몇 년 전에 터키 프로팀이 유럽컵에서 우승을 한 날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총을 쏴대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다. 우리나라 골프연습장처럼 생긴 미니 축구장이 동네마다 있어서 한 팀에 여섯 명씩 하는 6대6 축구를 즐긴다. 우리 아이들도 터키에서 동네 축구에 끼어서 한국 축구실력을 뽑낸 적이 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어디를 가나 축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풋살이라 부르는 실내축구, 그리고 해변에서 맨발로 하는 ‘비치 사커’다. TV에서는 하루종일 이런 경기의 중계를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열기 또한 이에 못지 않고, 칠레와 페루에서는 월드컵 예선 경기를 하는 날 거의 전 도시가 철시한 채TV시청에 빠져있는 모습도 보았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헝겊을 뭉쳐서 만든 공을 가지고 축구를 즐긴다. 때로는 실뭉치도 있고, 때로는 펑크난 공 속을 단단하게 채워서 축구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공을 가지고도 재미있게 경기를 즐긴다.
뭐니 해도 제일 인상깊은 축구를 본 것은 인도에서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철학적인 축구였다. 인도다운 축구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었다.
석가모니가 도를 깨친 보리수나무가 있는 곳 ‘부다가야’에는 널따란 풀밭이 있는데 종종 그 자리에 달라이라마가 와서 며칠씩 명상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거기서 수십 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섞여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골대가 없었다. 골대가 없으니 공격과 수비도 없고, 골인도 없다. 이기고 지는 것도 없었다. 그저 한사람이 뻥 차면 우루루 달려가서 또 뻥 차고 그런 것인데. 다니면서 승부가 없는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렇다! 이기면 더 좋겠지만, 꼭 이기고 지는 것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월드컵을 즐기자. 즐기는 것이야말로 월드컵 축구의 참 목적임을 분명히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성 본보 월드컵 자문위원/서울시 시정기획관dltjd@yahoo.co.kr